용기(勇氣)에 대하여
지교헌
나는 일찍부터 ‘용기’라는 말을 자주 들어왔다 그리고 어릴 때는 ‘숫기’가 없다는 말을 들으며 자라난 것 같고, ‘숫기를 용기와 같은 낱말로 인식해 온 것 같다. 따라서 나는 ‘용기가 없거나부족한 아이’로 자라났고, 남의 시선을 이끌만한 두각을 나타내는 일도 없이 비교적 평범하게
자라난 셈이었다.
용기라는 말을 꺼내고 보니, 중학교 수학 수업시간에 있었던 일이 떠오른다. 학생들이 모두 도표를 그리게 되었는데, 선생님은 도표에 대하여 설명하고 나서 그와 똑같은 도표를 그린 사람이 있는지 물으셨다. 난 "예"라고 분명히 대답하였다. 선생님은 고개를 돌리고 "예"라고 대답한 학생을 확인하려 하였지만 나는 장본인이라는 것을 밝히지 않고 끝까지 잠자코 있었다. 선생님은 끝내 나를 찾아내지 못하고 실패하고 말았다. 나는 그때 무슨 이유로 나라는 것을 밝히지 않고 숨겼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저 용기(?)가 없었다고만 기억된다.
나는 요즘 <맹자>를 읽으며 다시 “용기”라는 말에 대하여 관심을 갖게 되었다. 중국의 전국시대에 북궁유(北宮黝)라는 인물이 있었다. 그는 피부를 찔려도 움츠리지 않으며, 눈동자를 찔려도 피하지 않으며, 털끝만큼이라도 냄에게 창피를 당하면 마치 공개 장소에서 종아리를 맞는 것처럼 수치스럽게 생각하며, 비천한 걸인 같은 사람에게도 모욕을 받지 않는 동시에 만승(萬乘)의 군주에게도 모욕을 받지 않아 만승의 군주를 찌르는 것을 보기를 마치 갈부(褐夫)를 찔러 죽이는 것처럼 하찮게 생각하였고, 제후를 두려워하지 않아서 제후의 비난을 들으면 반드시 보복하였다고 한다.
기록을 보면 북궁유는 그 상대방이 걸인 같은 인물이거나 군주 같은 인물이거나를 막론하고 일관성 있게 무조건적으로 손톱만큼도 양보하거나 굽히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세상에 북궁유같은 사람이 실제로 있었을까 의심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주(周)나라왕조가 쇠망하고 난신적자(亂臣贼子)가 횡행하던 전국시대였으니, 충분히 그런 사람이 존재하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중국의 역사책이나 고전소설류에는 너무나 비정상적이고 이해하기 어려운 사건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것을 보면 북공유 같은 사람이 없었으리라는 생각도 불가능한 형편이다. 그들의 세계는 오직 용(勇)만이 있고, 지(智)와 인(仁)은 없었던 것 같다.
따라서 아무리 생각하여도 북궁유의 용기를 진정한 용기로 인정하기는 어려운 것이 우리의 상식이다. 그의 용기는 진정한 용기가 아니라 사이비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인정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날의 세태는 어떠한가?
특히 우리의 현실을 가만히 살펴보노라면 북궁유의 용기와 완전히 같은 것은 아닐지 라도 그와 매우 유사하거나 상통하는 용기의 소유자가 없을지 궁금하다. 북궁유를 닮은 사람들은 자신의 권위나 사리사욕이나 자존심을 철저히 지키고 남에게 한 치도 양보하지 않는 절대 절명의 인생관이나 가치관을 관철하려는 인상을 준다.
매일처럼 대중매체를 통하여 보도되는 기사들을 보면 참으로 놀랍다. 살인 상해 폭행 방화 유괴 사기 유기 외설 강간 강도 절도 횡령 수뢰 음주운전은 말할 것도 없고, 중상모략 허위 날조 불법 탈법 위증 표절 등……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반인륜적이거나 반사회적이거나 반국가적인 범죄행위가 벌어지고 있으니, 그것도 국가의 지도층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저질러지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범죄사실이 확인되어 사법절차를 거쳐 처벌을 받은 전과자가 다시 어엿한 지도층의 위치에 나타나 군림하는 형편이니, 이러한 현실에 비교한다면 국궁유의 용기는 차라리 순진하여 변명의 여지를 가지고 있는 듯하다.
공자는 용기에 대하여 “스스로 반성하여 정직하지 못하면, 비록 무식한 거지라도 내가 어찌 두려워하지 않으리오? 스스로 돌이켜 정직하면 비록 천만인이라도 내가 당당히 대적하리라(自反而不縮 雖褐寬博 吾不惴焉 自反而縮 雖千萬人吾往矣)”고 하였다 이를 보면 <맹자>가 말한 공자의 용기라는 것은 스스로 정직할 때만 그 값을 지니는 것이고, 내가 정직할 때는 어떠한 세력에 대하여도 결코 굽힘이 없음을 알 수 있다.
세상에는 나보다 많이 배우고 지혜롭고 유능하고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고 그와는 반대로 나보다 많이 배우지도 못하고 지혜롭지도 못하고 무능하고 권력도 없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내가 정직하지 못하다면 아무리 어리석은 사람에게라도 머리를 숙이고 복종할 일이요, 내가 정직하다면 아무리 훌륭하고 권세가 있고 또 많은 사람 앞이라도 정정당당히 나서서 상대할 수 있는 것이며 그것이 곧 진정한 용기라는 것이다.
참다운 용기란 무엇인지도 헤아리지 못하고 명예나 재물이나 권력에 사로잡혀 경거망동하고 만용을 부리는 지식인이나 정치인들을 보면서 북궁유와 공자의 용기에 대하여 생각하게 되는데, 북궁유의 용기를 버리고 공자의 용기를 본받는 것이 진정한 용기의 실천이라고 할 수 있다. 철면피하고 파렴치하고 위선적이고 사회정의를 파괴하는 사이비에 속하는 거짓된 용기가 사라지고 진정한 용기가 충만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지교헌 | 한국학중앙연구원한국학대학원 명예교수, 한국공무원문학협회 회원
E-mail : d424902@hanmail.net
‘계간 공무원문학 2017년 가을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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