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 상식. 심리

글쓰기의 비결 - 사계절의 리듬을 타라!

송담(松潭) 2017. 9. 3. 18:55

 

 

글쓰기의 비결 - 사계절의 리듬을 타라!

 

 

 

 글쓰기에도 비결이 있을까?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있긴 있지만 너무 간단하다는 뜻이다. 일단 매일 쓰면 된다. 씨앗문장을 필사하든 아니면 한 편의 에세이 혹은 한권의 책을 쓰든, 뭐가됐건 매일의 규칙적 작업이 필요하다. 시간은 상관없다. 4시간 정도가 가장 좋겠지만, 안 되면 2~3시간 혹은 1시간 그것도 어려우면 하루 30분이어도 괜찮다.

 

 당연히 잘 써지는 날도 있고, 한 글자도 안 써지는 날도 있다. 그 과정을 우직하게 밀고 가다 보면 자연스레 리듬이 몸에 배게 된다. 그것이 자기만의 봄여름가을겨울이다. 물론 그 리듬을 창안해내려면 수많은 시행착오가 필요하다. 시간을 안배하는 것부터 체력관리, 인간관계에 이르기까지, 이 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지리한 것이다 봄에서 여름, 여름에서 가을, 가을에서 겨울 이 네 마디를 건너는 것은 오히려 할 만하다. 조금만 참으면 되니까. 또 뭔가 변화가 감지되니까. 하지만 아무런 변화도 감지되지 않는 시간들이 문제다. 고통보다 무서운 것이 권태라는 말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이 무미건조해 보이는 시간을 통과하는 것이 글쓰기의 관건이다.

 

 대학원 시절 수많은 천재들을 만났다. 박람강기는 기본이고 상상력의 수준도 엄청 났다. 천재들의 숲에서 대체 어떻게 살아남는단 말인가? 하면서 자괴감에 시달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였다. 근데, 놀랍게도 시간이 지나면서 천재들이 하나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학문을 포기하고 다른 영역으로 튀어 버린 것. 그들에게 있어 최고의 장벽은 글쓰기였다. 특히 글쓰기의 그 무미건조한 시간들을 견디지 못했다. 두뇌와 재능이 뛰어났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으리라. 천재들의 단점은 조급 함이다. 빨리 경상에 이르지 못하면 자신을 용납하지 못한다. 게다가 재능이 월등하니 다른 영역에 진입하기도 수월했으리라. 그러다 보니 결국 두뇌도, 재능도 평범한 학인들만 남았다. 나 역시 그중 하나였다. 덕분에 천재에 대한 콤플렉스를 완전히 떨칠 수 있었다. 요컨대, 글쓰기에는 천재성이 필요하지 않다. 평범할수록 좋다. 아니, 평범한 신체만이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평범해야 그 과정을 건너뛰겠다는 꼼수나 오만을 부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글쓰기와 일상이 자연스럽게 리듬을 타게 된다. 그게 바로 자기만의 '봄여름가을겨울'이다.

 

 이 원리는 실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어떤 글이 좋은 글인가? 기승전결을 갖춘 글이다. 기승전결이 무엇인가? ()는 문제제기 승()은 그 제기된 문제를 펼치는 것, ()은 그 문제에 대한 독창적인 해석, ()은 전체를 수렴, 압축하되 앞으로 탐구할 과제를 제시하는 것이다. 이렇게 정리하고 보면 뭔가가 연상되지 않는가? 그렇다! 기승전결에는 봄여름가을겨울의 차서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모든 글에는 사계절이 흘러간다. 아니, 그런 글이라야 타자와 소통할 수 있다. 봄 여름에서 끝나거나 봄에서 가을로, 여름에서 겨울로 건너뛰면 소통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아무리 전복적인 사상이라도 그 나름의 사계절을 창안해내야 한다.

 

 기()는 봄이다. 봄이 오면 얼어붙은 대지를 뚫고 싹이 움튼다. 그렇듯, 기의 단계에선 신선하고 역동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문제제기 혹은 문제설정의 단계다. 그러기 위해선 무엇보다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타자들을 잘 관찰해야한다. 생각과 말과 행동을 중심으로, 따라서 질문은 성적이나 스펙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성적이 좋고 스펙이 좋을수록 질문이 부재한 경우가 많다. 주어진 질문에 답을 하는 습관이 몸에 밴 탓이다. 글쓰기에는 치명적이다. 이럴 땐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글쓰기가 무엇인지, 왜 글을 쓰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봄의 초심을 되살리는 것이다.

 

 승()은 그 질문들이 무성하게 펼쳐지는 단계다. 질문을 둘러싼 정황들, 관련사항 및 사례들이 마구 뿜어져야 한다. 즉 왜 그런 문제를 설정했는지, 그 문제가 포괄하는 영역이 어디까지인지, 문제의 절실성과 구체성이 어느 정도인지 등이 밝혀져야 한다. 여름이 오면 만물이 온전히 자신을 드러내는 것처럼, 작렬하는 태양아래 모든 것이 다 노출되는 것처럼, 그와 같이 화려하고 풍성해야 한다. 문체와 어법, 스토리 구성방식 등이 유감없이 발휘되는 단계이기도 하다,

 

 전()은 일종의 반전이요 뒤집기다. 부침개 뒤집을 때처럼(^^) 과감하고 확실해야 한다.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자기만의 독창적 시선이 드러나는 지점이다. 화려하게 펼쳐졌던 언어들이 일정한 방향으로 거두어지면서 동시에 깔끔하게 다듬어져야 한다, 핵심을 간추리고 결실을 맺는 시간이다. ‘우주의 대혁명이라는 가을이 거기에 해당한다. 혁명이라는 명칭에 걸맞게 짜릿한 긴장과 스릴이 연출되어야 한다.

 

 결()은 대단원이자 마무리다. 꽃과 잎과 열매가 씨앗으로 되는 순간이다. //전의 화려한 담론들이 간결한 화두로 응집되는 순간이다. 학술논문에선 본론의 논의를 요약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그건 가장 재미없는 결말에 해당한다. 동어반복으로 끝나기 일쑤다. 가장 좋은 방식은 이전의 변화무쌍한 논의를 집약함과 동시에 또 다른 질문을 던지면서 마무리하는 것이다. 이른바 열린 결말이 그것이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 여행이 시작되듯이. 겨울의 절정에서 봄이 잉태되듯이. 이것이 글쓰기의 사계다.

 

 그렇다. 글쓰기를 수행하는 과정도, 글쓰기의 내적 구성도 결국은 사계절과 함께 리듬을 타는 법을 터득하는 것이다. 이런 이치는 사랑과 연애, 우정과 사업, 여행과 모험 등 삶의 온갖 국면에 다 적용될 수 있다. 결국 글쓰기란 인생과 자연을 배우는 것인 셈이다. 참으로 명료하지 않은가. 또 참으로 유용하지 않은가.

 

고미숙 / ‘고전과 인생 봄여름가을겨울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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