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와 스티브잡스
Simplicity is the ultimate sophistication
(단순함은 궁극의 정교함이다.)
스티브 잡스의 삶에서 가장 중요했을 것이라고 짐작되는 문장입니다. 애플의 제품을 쓸 때마다 감탄하는 부분이기도 하죠. 애플의 제품들은 쉽고, 직관적이며, 심플하고 군더더기가 없습니다. 때론 불친절할 정도로 많은 것이 생략되어 있습니다.
‘단순함은 궁극의 정교함이다.’ 이 말은 분명 스티브 잡스가 했다고 믿고 있었는데, 어느 날 이 말의 원전을 찾아보니 놀랍게도 르네상스 시대의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한 말이었습니다. 21세기에 전 지구적인 영향력을 가졌던 인물이 가슴에 품은 문장은 15세기를 살았던 거장의 입에서 나왔던 겁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600년 전의 이야기가 여전히 유효하다니요.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저 문장과 정말 비슷한 글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시절보다 2천년 전의 동양에서도 발견된다는 것입니다. 노자의 <도덕경>속에 등장하는 ‘大巧若拙’이 그것입니다.
대묘약졸, ‘큰 솜씨는 마치 서툰 것처럼 보인다.’는 뜻이죠. 가장 훌륭한 어떤 것은 기교 없이 담백하고 단순하다는 겁니다. 스티브 잡스의 문장과는 시간적으로 2500년 이상 떨어진 이야기죠. 대가가 되면 결국 비슷한 진리에 닿는가 봅니다. 그리고 저는 맹자에게서도 비슷한 문장을 봅니다.
博學而詳說之 將以反說約也 (박학이상설지 장이반설약야)
넓게 배우고 깊이 생각하는 것은 간략히 설명하기 위함이다,
정말 그렇죠. 어떤 것을 완벽히 파악한 사람은 그것을 굉장히 쉽고 단순하게 설명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아주 얕게 알고 있을 때, 설명은 장황해 집니다. 핵심이 무엇인지에 대한 자신이 없으니까요.
제가 가장 좋아 하는 화가는 조선시대의 겸재 정선입니다. 그의 그림을 한번 볼까요? 겸재의 걸작, <박연폭>입니다. 겸재가 일흔이 넘은 나이에 그린 작품이라고 합니다. 실제의 폭포를 상당히 단순화해서 그렸습니다. 그림만 봐도 그 단순 명쾌한 필치가 느껴지죠. 폭포 좌우에 펼쳐진 바위의 모양이 사실적이라기보다는 일종의 패턴처럼 과감하게 단순화되어 배열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폭포의 시작과 끝 점에 바위를 배치해서, 보는 이가 자연스럽게 시선을 위에서 아래로 움직이게 만듭니다. 직선의 양 끝을 잇는 것처럼 말이죠. 가만히 보고 있으면, 정말 물줄기가 떨어지는 느낌이 듭니다. 말 그대로 단순함이 궁극의 정교함으로 이어지는 경지입니다. 겸재는 불필요한 것을 모두 생략해서 폭포의 본질을 드러낸 겁니다. 단순해서 핵심이 바로 드러나는 겁니다. 이런 게 바로 대가로구나 감탄하는 부분입니다.
자동차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하는 말 중에, ‘튜닝의 끝은 순정’이란 말이 있습니다. 고치고, 더하면서 자기 자동차를 아끼던 사람도 결국은 순정(원래 자동차를 살 때 달려 있던 그것)으로 돌아간답니다.
맛집을 찾아다니는 사람들도 비슷한 말을 합니다. 진짜 맛집일수록 메뉴판도 단순하다고요. 백 퍼센트 공감합니다. 단순하기 이를 데 없는 메뉴판을 보면, '나는 이 음식이 정말 자신 있고, 이것이 우리 집의 핵심이고, 그러니 이것 이외에 딱히 뭘 더할 필요가 없고, 당신이 이걸 먹기 싫다면 당신만 손해다'라는 긴 문장을 읽는 기분이죠.
그래서 일을 하다가, 제가 내놓은 결과물이 못나 보이고, 자꾸 뭔가를 더하고 싶을 때마다 생각합니다. 가장 아름다운 건 쉽고도 단순한 거다. 내가 자신이 없으니 자꾸만 더하고 싶은 거다.
중국 무술영화를 보면, 복잡한 무기를 쓰는 놈이 먼저 죽습니다. 결국엔 강력한 칼 한 자루가 이깁니다. 이 칼에 저 도끼를 이어붙일 시간에, 나만의 강력한 칼 한 자루는 무엇인지를 오랜 시간 들여다보는 것이 더 중요할 겁니다. 스티브 잡스와 맹자와 다빈치와 노자가 2500년에 걸쳐 한 생각이니, 아마 틀리진 않을 겁니다.
유병욱 / ‘생각의 기쁨’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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