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 것인가?

노년, 지혜를 일구는 복된 시간

송담(松潭) 2017. 9. 11. 09:33

 

 

노년, 지혜를 일구는 복된 시간

 

 

 

 

 

 

사진출처 : 한국경제 매거진

 

 

 

 수천 년 전에 노년기에 대한 아주 특별한(사실은 아주 당연한) 노하우를 남겨 준 이가 있다. 노년에 관하여 우정에 관하여(천병희 옮김, )을 남긴 키케로(BC 106 ~ BC 43)가 바로 그다.

 

 사람들은 왜 노년을 두려워할까? 노년을 완숙한 시기가 아니라 결핍의 시기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감 각적 쾌락을 더 이상 누릴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키케로는 동의하지 않는다. “세월이 정말로 젊은 시절의 가장 위험한 약점으로부터 우리를 해방해 준다면, 그것은 세월이 우리에게 주는 얼마나 멋진 선물인가!" 쾌락을 누리지 못하게 된 것은 약점이 아니라 노년의 특권이란다.

 

 쾌락은 불이 물을 압도하는 불균형에서 비롯한다. 불은 방향도 목적도 없다. 그저 타오르는 것만이 목적이라면 목적이다. 그래서 쾌락에 휩쓸리다 보면 내 안의 물이 점점 더 고갈되어 버린다. 생명활동이 위태롭게 되는 것이다. 생리적으로 불기운이 약해지면서 물과 불의 잔잔한 균형을 이룬다. 키케로에 따르면, 노년은 마음이 성욕과 야망 등 온갖 전투를 다 치르고 난 뒤 자신과 더불어 화해하는 시간이다. 그럼 노년의 삶은 무엇으로 이루어지는가? ‘친구들과 의 소통’, 그리고 왕성한 탐구열다시 말해, 벗들과 함께 지혜를 일구는 시기, 그것이 바로 노년이다. 참으로 복된 시간이 아닐 수 없다.

 

이 당연한 이치가 우리에겐 참으로 낯설기만 하다. 우리 시대에 있어 노인의 삶이란 첫째는 경제, 그리고 그 다음엔 쾌락이다. 풍부한 노후자금으로 청춘 못지않은 건강을 누리면서 여생을 맘껏 즐기는 것. 이것이 노인 담론의 핵심이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노후의 즐거움은 오직 에로스적 관계다. 부부 사이의 끈끈한 친밀감을 회복하거나 아니면 또 다른 사랑을 만나라고 부추겨 댄다. 오직 그것만이 고독과 쓸쓸함을 극복하는 길이라면서.

 

우리 시대의 노인 문화는 실로 위태롭다, 가족의 혈연관계는 이미 사라졌는데, 이웃이나 친구, 청년들과 연결될 네트워크가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부가 충만하고 복지 시스템이 훌륭하다고 해도, 사람이 없고 친구가 없다면, 노년의 삶은 고독하고 쓸쓸할 따름이다. 고립과 단절, 생명이 가장 혐오하는 낱말이다. 하여, 누구라도 노년을 대비하고자 한다면 지혜와 우정이라는 가치를 연마해야 할 것이다.

 

죽음의 지혜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것은 무엇이든 선으로 간주되어야 하네. 한데 노인들이 죽는 것보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 또 어디 있겠는가? ( ... ) 마치 과일이 설익었을 때에는 따기가 힘들지만 농익었을 때에는 저절로 떨어지듯이, 젊은이들에게서는 폭력이, 노인들에게서는 완숙이 목숨을 앗아간다네, 그리고 내게는 이런 완숙이란 생각이 너무나 즐거워, 내가 죽음에 더 가까이 다가갈수록 마치 오랜 항해 끝에 마침내 육지를 발견하고는 항구에 입항하려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네.”

 

모든 익은 것은 죽음을 욕망한다는 니체의 아포리즘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충분히 무르익어서 떨어지는 과일처럼 자연스러운 것은 없다. 죽음 또한 그런 리듬을 밟아 갈 수 있다면, 그보다 평안한 일도 없으리라. 그렇다, 이런 지혜의 여정이 주어진다면, 노년은 두려움과 경멸의 대상이 아니라 누구든 고대해 마지않는 복된 시기가 되지 않을까.

 

고미숙 / ‘고전과 인생 봄여름가을겨울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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