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의 어깨
이미지 출처 : 소셜 이노베이터
우리나라는 동전이 10원, 50원, 100원, 500원 네 종류이지만, 영국은 1페니, 2펜스, 5펜스, l0펜스, 20펜스, 50펜스, 1파운드, 2파운드까지 여덟 종류나 됩니다. 그중 2파운드 동전 보신 적 있나요? 가장 비싼 동전답게 크기도 가장 크고, 금색과 은색이 섞여 살짝 있어 보이기까지 합니다. 2파운드 동전이 다른 동전들에 비해 유독 특이한 건, 동전의 옆에 글자가 새겨져 있다는 겁니다. 자세히 보면 ‘standing on the shoulders of giants’라는 문구가 대문자로 새겨져 있죠. ‘거인의 어깨’라니! 이 문구를 2파운드 동전에서 처음 발견했을 때, 문구 자체의 낯섦에 놀라고, 그 말을 동전의 옆면에 새겨놓은 익숙하지 않은 발상에 한 번 더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거인의 어깨’의 정체에 대해 제대로 알게 된 건 이후로 꽤 오랜 시간이 지난 뒤의 일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이 문구는 아이작 뉴턴이 썼던 문장 중 일부를 발췌한 말이었더군요. 원문은 이렇습니다. "If I have seen further, it is by standing on the shoulders of gients " (내가 멀리 볼 수 있었던 것은, 거인의 어깨 위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이 문장에 대한 저의 첫인상은 이랬습니다. ‘대과학자 뉴턴이 자신의 업적을 겸손하게 표현한 문장이구나. 누가 봐도 아이작 뉴턴은 현대과학의 거인 같은 존재일 테니까요. 하지만 몇 권 책을 통해 과학의 역사에 대해 어렴풋하게나마 알게 되면서 생각이 좀 달라졌습니다, ‘뉴턴의 저 말은 겸손이 아니구나. 팩트구나. 모든 진보는 앞선 거인들의 성취에 빚지고 있구나.’
폴란드의 천문학자 코페르니쿠스(1473-1543)의 지동설이 없었다면,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 일부라는 생각도 없었을 겁니다. 우주는 여전히 신의 영역이었겠죠. 독일의 천문학자 케플러(1571-1630)가 생각해낸 행성운동의 법칙이 없었다면 뉴턴(1642-1727)의 만유인력의 법칙도 입증되기 어려웠을 거라 합니다. 뉴턴이라는 거인도 그보다 앞선 시대를 살았던 두 거대한 과학자의 어깨에 빚을 지고 있는 것이죠. 어느 영역의 어떤 천재들도 혼자만의 힘으로 위대해지는 경우란 없습니다. 독학으로 거장이 된 사람이라 할지라도, 적어도 ‘책’의 도움은 받았을 겁니다. 말하자면 글을 통해 공자와 맹자의 어깨 위에 올라가 세상을 보는 거죠.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도 피아노 학원 시절이 있습니다. 세계적인 작가들의 초기 인터뷰를 보면 빠지지 않는 것이 자신의 글에 영향을 준, 동경하는 작가들의 이름이 적힌 길고 긴 리스트입니다.
그토록 대단한 사람들도 자신의 시대를 앞서 살아간 거인들을 따라 하고, 그들의 성취를 흡수하는 단계를 밟다가 어느 순간 자신의 것을 찾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평범한 우리들이 지금의 자신보다 조금 더 뛰어나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간단합니다. 복사기가 되는 겁니다.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따라 하는 겁니다.
국립현대무용단을 이끄는 예술감독 안성수 씨의 인터뷰에서 이런 문장을 본 적이 있습니다. ‘자신의 틀이 정립된 사람만이 결국 틀을 깰 수 있다.’ 기존의 틀을 파괴하는 대단한 업적도, 일단 틀을 만든 다음에나 가능하다는 겁니다. 아마 우리가 아는 어떤 거대한 이름들도, 복사기의 시절을 거쳤을 겁니다. 그러니 우리처럼 평범한 사람들은 부끄러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따라 하는 거죠. 그렇게 천천히 ‘나’라는 뼈대를 세우고, 여기저기에서 떼어온 좋은 생각들과 노하우들을 붙여 살을 만드는 겁니다. 그리고 시간의 검증을 받는 겁니다. 내게 맞는 것들은 단단하게 뼈대에 붙을 것이고l, 그렇지 못 한 것들, 내 능력 밖의 것들은 자연스럽게 뼈대에서 멀어져나가겠죠. 그 작업을 반복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내가 누구인 시 말하게 될 날이 올 겁니다. 혹시 아시나요? 운이 좋다면 나 또한 기인의 뒷모습을 하고 있을지. 그리고 언젠가. 누군가 나를 복사하고, 내 어깨 위에 올라 더 멋진 무언가를 만들어낼지.
유병욱 / ‘생각의 기쁨’중에서
깊이와 넓이
어느 날 이런 문장을 주웠습니다.
나는 깊게 파기 위해서 넓게 파기 시작했다.
스피노자의 말이죠. 한 줄의 글인데 꽤 오랜 시간 눈을 땔 수 없더군요. 이런 게 좋은 문장의 마력 같습니다. 속으로 수십 번 생각했지만 명확하게 정리할 수는 없었던 어떤 생각의 덩어리에, 한 줄의 문장이 통과하는 순간, 모든 것이 분명해 지는 거죠.
더 좋은 생각을 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깊이’는 정말 중요한 단어일 겁니다. 깊이 있는 생각은 문제를 해결하고, 깊이 있는 연주는 그걸 알아보는 이를 전율하게 하고, 깊이 있는 문장은 잠시 책을 덮고 호홉을 가다듬게 하죠. 언뜻언뜻 드러나는 누군가의 깊이는 그 사람을 달라 보이게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우리는 대체로 남들의 깊이를 부러워합니다. 독서의 깊이, 지식의 깊이, 그뿐인가요? 자동차에 대한 상식의 깊이, 여행지를 추천하는 그녀의 경험의 깊이, 술자리에 모인 사람들의 성향과 그날의 날씨에 맞게 적절한 안주를 골라 주문하는 친구의 내공도 깊이의 일종입니다. 깊이는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깊이는 매력적입니다. 그것은 돈을 주고 살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깊이는 반드시 어느 정도의 시간을 지불해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니까요. 세상의 모든 맥주를 마셔보겠다며 전 세계 맥주의 병뚜껑을 모으는 동료 카피라이터의 뒷모습은, 그래서 경건해보이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깊은 사람이 있을까요? 어떤 분야에 한 ‘깊이’ 한다는 사람도 처음엔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이건 불변의 진리입니다. 다만 그는 어느 순간 자신의 관심을 끈 어느 영역을 골랐고, 시간을 들여 그 영역을 파 내려가기 시작했을 겁니다. 우리는 그 삶이 들인 시간(과정)은 볼 수 없으나, 그 사람이 보여주는 깊이(결과)에만 감탄하는 거죠.
스피노자의 말처럼, 깊게 파려면 일단 넓게 파봐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예상치 못한 어느 영역이 ‘쑥 내려가는’ 경험을 하게 되고, 그 경험이 생각보다 짜릿하다는 걸 알게 되고, 그렇게 자신만의 깊이가 조금씩 생기는 거죠. 여유가 있을 때 여기저기 삽을 찔러보고, 의외로 깊이 들어가는 지점을 확인하고, 시간을 들여서 파 내려가는 거죠.
몇 번 땅이 쑥 내려가는 즐거움을 경험한 사람으로서 ‘생각의 땅 파기’ 팁을 드리자면 이렇습니다. '이러저러한 것이 좋다더라’ 하는 남들의 의견보다는 본인의 직관에 의지하는 편이 좋습니다. 이유 없이 마음이 가는 것, 꽤 오랜 시간 동안 나를 당겨온 것들에는 분명 이유가 있습니다. 이를테면 살면서 내 안에 쌓인 결핍이라든지, 본능적으로 끌리는 취향 같은 것들이요. 이런 것들이 어느 순간 땅 파기의 무서운 동력이 되는 경우가 많더군요. 그래서 남의 의견보다는 내 생각이 중요합니다.
다만 인생의 많은 부분들이 그렇듯이, ‘정말 믿을 수 있는 사람’의 조언은 따라볼 가치가 있습니다. 처음부터 파내려가기가 재미있는 땅도 있지만, 처음엔 별로다 싶어도 누군가의 말을 믿고 조금만 파고들어가 보면 생각보다 흥미로운 땅도 분명 있으니까요. 생각을 닮고 싶은 선배나 동료가 있다면, 그가 깊이를 보여주는 영역을 따라 파보는 것도 좋습니다. 세상을 보는 관(觀) 이 비슷하다면, 생각하는 방식도 흥미를 느끼는 부분도 비슷할 테니까요.
깊이는 그렇게 넓이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행여, 깊이가 생기지 않는다고 해도 어떤가요? 어쩌면 얕게 파고들어간 땅이 아주 많은 것도 또 다른 방식의 ‘깊이’이자 대단한 매력이 아닐까요. 무엇이든 물어보면 척척 대답해주던 -하지만 그 말이 사실인지는 결코 알 수 없었던- 막내 삼촌이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가진 것처럼 말이죠.
유병욱 / ‘생각의 기쁨’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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