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은 이미 시작되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50여 년 전 이야기를 잠깐 해보자. 어릴 적 나는 개구리참외를 하나 얻었는데, 모양이 너무 예쁘고 신기해서 먹어치우지 않고 보관했었다. 그것도 책상 위에 올려놓고 수시로 바라보곤 했다.
어느 날이었다. 여름 밤에 창문을 열고 자고 있는데 어디선가 ‘퍽’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시원하고 뭔가가 풀리는 듯한 소리였다. 잠결에 무슨 소리일까 잠간 생각했지만 창 밖에서 들려오는 온갖 소리 정도로 이해했다. 다시 잠을 청하려는데 또다른 소리가 들렸다. ‘주르륵...’ 이번엔 물이 흘러내리는 소리였는데, 책상 위에서 들려온 것이 분명했다.
재빨리 일어나 책상을 보니 홍건히 젖어 있고, 개구리참외가 터져 있었다. 나는 물을 닦을 생각도 하지 않고 상황을 살펴봤다. 퍽 하는 소리는 참외가 터진 소리였고, 주르륵 흐르는 소리는 그 속에서 물이 나오는 소리였다. 참외가 오래되다 보니 속으로 곪아터진 것이었다. 그동안 겉으로 보이지는 않앗지만 속으로는 물러 터지고 있었던 것이다. 참외 껍질이 두꺼워서 멀쩡해 보이다가 어느 순간 일시에 터져버린 것이었다.
나는 참외를 치울 생각을 하지 않고 한참 동안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저절로 웃음이 터져 나왔고, 그 관경을 평생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다. 나는 어떤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보이지 않는 속에서 진행되는 자연현상! 그것은 어느 날 밖으로 드러나지만, 실은 오랫동안 준비된 것이다.
우주 대자연의 현상은 이런 식으로 진행된다! 주역의 괘상에 지풍승(地風升)이 있는데,
이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준비하고 있다는 뜻이다. 즉, 땅속에서 씨앗이 작용하고 있다는 의미다.
우리의 인생도 어느 날 일이 벌어지지만 그것은 갑작스러운 것이 아니다. 보이지 않게 숨겨진 채 이니 계속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운명도 이렇게 다가온다. 내면에서 구준히 진행되고 있던 것이 임계점에 도달하면 밖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운명이란 오랫동안 준비되는 것이다. 누적되다가 견딜 수 없게 되면 상전이(相轉移)를 일으킨다.
어느 날 무슨 일이 발생할 것인가? 갑자기 오는 것이 아니다. 지금 이미 수많은 것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이 그것을 보지 못할 뿐이다. 무엇이 지금 진행되며, 그것은 언제 드러날까? 공자가 천명을 두려워했던 것은 이런 까닭이다. 천명은 우리가 미리 볼 수 없기 때문에 두려운 것이다.
삼가 조심해야 한다. 은밀한 곳에서 쉬지 않고 꾸준히 준비하고 있는 우리의 운명, 그날의 깨달음 이후 나는 운명이 오는 모습을 보고자 노력해 왔다. 어느 날 어느 운명이 들이닥칠까? 그 운명은 이미 시작되고 있다. 잘 생각하고 또한 잘 살펴냐 할 것이다. 그리고 들어야 한다. 운명이 오고 있는 소리를!
< 2 >
운명에 도전 할 수 있는 실력은 분명 돈이나 권력은 아니다. 그 사람의 인간성 자체가 얼마나 위대한가에 따라 운명은 그 앞에서 많게 또는 적게 변할 준비가 되어 있다.
< 3 >
운명은 애써 관심을 두지 않으면 잡초만 무성한 정원처럼 되어버린다. 정원에 꽃을 심듯이 운명의 길에 꽃을 심어야 하는 것이다.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느냐고? 운명을 생각하는 것 자체가 운명을 관리하는 것이다. 경건함이 없는 사람은 말한다. 운명이란 없는 것이니 대충 열심히 살면 된다고... 실은 그렇지 않다. 이런 사람은 하늘에 대해 오만한 사람으로 실수가 많고 재수가 나쁜 법이다.
옛말에 “깊은 연못에 임한 듯하고 살얼음 밟듯 하라(如臨深淵 如부履薄氷)”는 가르침이 있다. 삼가 운명 앞에 겸손하라는 뜻이다. 운명을 무시하면 운명도 그 사람을 무시하는 법이다. 좋은 운명을 얻고자 하는 사람은 매사에 철저하고 고귀한 행동을 하며 살아간다.
< 4 >
만일 어떤 사람이 자기 단점을 단 하나도 찾아내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곧 망할 사람으로서, 나쁜 운명이 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자기 단점을 찾아내지 못하는 사람은 아주 악한 사람이다. 계속 그 짓을 할 테니 말이다.
그런 사람 말고 누구든 운명을 개선하고자 하는 사람은 필사적으로 자기 단점을 찾아야 한다. 이것이 최우선적으로 할 일이다. 이때 죄를 지은 것과 단점은 엄연히 다르다는 것을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 사람은 실수라든가 잘못된 판단 때문에 운명이 망가지는 것이 아니다. 운명은 오래된 단점 때문에 망가진다. 엊그제 만들어진 비교적 새로운 단점은 아직 운명을 파괴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오랜 세월이 지나서 효력을 발휘한다. 지금 당장 운명을 고치려면 오래되고 지속적인 단점을 찾아야 한다.
< 5 >
이건희 회장이 말했다. “부자처럼 생각하고 부자처럼 행동하라. 그러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부자가 되어 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것은 마음이 부자인 것을 말한다. 마음이 거지면 거지가 되고, 마음이 부자면 부자가 되는 것이 하늘의 섭리다. 하늘은 사람에게 복을 주려고 할 때 그 마음을 먼저 살핀다. 마음이 거지인 사람은 하늘도 피해간다. 아니, 벌을 준다. 하지만 열심히 사는 사람은 하늘도 돕고 싶어하는 법이다.
남에게 써야 할 돈을 쓰지 않고 몰래 아끼는 행위도 실은 거지 짓과 다르지 않다. 부자가 따로 없다. 남에게 흔쾌히 쓸 줄 알면 부자다. 마음이 거지인 사람은 척 보면 알 수 있다. 궁상맞게 아끼고 남이 쓰기를 기다린다. 항상 어디서 공돈이 생기지 않을까 허망한 꿈을 꾸는 것이다. 거지 병을 고치는 방법은 간단하다. 남에게 자주 베풀면 된다.
< 6 >
세상에 나쁜 놈은 친구가 없는 법이고 이런 자는 운명이 병들 수밖에 없다. 공자는 말했다. “덕이 있는 자는 외롭지 않다. 반드시 이웃이 있다. (德不孤 必有隣)”
< 7 >
어떤 사람은 취미가 전혀 없다고 한다. 그런 사람이 진짜 있다. 인생을 그저 밥 먹 자고 멍하니 세상을 바라보며 살겠다는 뜻이다. 세상을 보기 위해 여행 등을 한다는 것도 아니다. 그저 세상이 보이기 때문에 보고 있을 뿐이다. 이런 사람은 자기 자신을 배신하는 사람인데, 주역의 괘상으로 산풍고(山風蠱)에 해당한다.
이 괘상은 속으로 갉아먹어 붕괴시킨다는 뜻인바, 취미가 없는 사람은 세월을 까먹고 인생을 붕괴시키고 있다. 반면 취미생활을 하는 사람은 삶을 창조해가는 사람이다.
잘 논다는 것은 무의미한 게 아니다. 취미는 동물과 달리 인간의 특권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점점 더 인간다워지는 것이다.
< 8 >
운명이란 창조적인 것인즉, 반드시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운명은 아무렇게나 마구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무엇인가 그만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직장에서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은 바로 지금 생산을 위해서다. 당연히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운명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절대로 될 일이 아니다. 주어진 것에 열심히 매달리는 것은 현상유지일 뿐이다.
운명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늘 하는 일 말고 무엇인가 다른 일도 해야한다. 현실에 불성실해도 좋다는 뜻이 아니다. 현실은 현실대로 충실하되, 그밖에 무엇인가가 더 필요한 것이 있음을 이야기하는 중이다.
그렇다면 언제 그 추가적인 일을 해야하는가. 물론 직장에서는 업무 말고 다른 일을 하면 안 된다. 퇴근 후에나 가능하다. 이러한 자유시간을 운명 개척에 써야 한다. 누구든 자유시간이 없이 매일 같은 일에만 매달린다면 오히려 게으르다고 말해야 한다. 부지런함이란 주어진 일은 물론이고 앞날을 위해 준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옛 성인(은나라 탕왕)도 말했다. “날이면 날마다 새로워져라(日新又日新)”
아침에 일찍 일어나 주어진 일에만 충실하다보면 새로워지기는커녕 점점 판에 박힌 사람이 되어갈 것이다. 퇴근 후에 곧장 집으로 달려가 다음 날을 대비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일하고 남은 시간에는 반드시 새로운 운명을 개척하는 데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현재에만 만족해서는 안 된다.
밤늦도록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아침 이른 시간에는 현재에 충실해도 좋다. 하지만 저녁 늦은 시간에는 먼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 저녁형 인간은 방만한 것 같지만, 실은 미래를 대비하는 창조적 인간인 것이다.
< 9 >
세상은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내가 아는 수많은 사람들 중 99.9999%가 다 똑같았다. 자식 말고는 따로 인생이 없는 것이다. 그들은 점점 친구도 없어지고 철학도 없어지고 오로지 자식이다. 사회에 나가 열심히 일한다지만 짐승이 새끼를 위해 먹잇감을 찾으러 다니는 것과 전혀 다르지 않다. 삶이란 위대하거나 조금이나마 가치가 있어야 항 텐데 말이다.
삶의 방식도 그렇다. 오늘 그 자체가 오로지 미래를 위해서만 있다면 모두 다 자살하는 게 편하다. 애써 살아봐야 죽음에 이르는 것이 아닌가. 삶이란 현재가 이어가는 것이지, 미래만을 위해 현재가 바쳐지는 것은 아니다.
< 10 >
크게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선 대범한 마음을 갖추어야 한다. 큰 그릇에 큰 사건이 생기는 법이다. 주변에 위대한 사람이 있으면 그의 곁에 잇을 기회를 자주 만드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혼자 상상만 하고 있으면 째째해지는 법이다. 이를 두고 ‘우물 안 개구리’라고 하거니와 사람은 한도 끝도 없이 견문을 넓혀가야 한다.
크게 산다는 것은 견문을 넓히고 거기서 길을 발견하는 데서 시작된다. 폭넓게 산다는 것이 바로 이것인데, 그래야만 운명이 오는 법이다. 여기에 한 가지 방법이 있다. 따뜻하고 편안한 곳에만 있지 말고 바람 불고 불편한 곳에 자주 나가보는 것이다. 넓은 바다나 벌판을 바라보는 것도 좋다. 이것은 째째함을 털어내고 대범해지는 방법이다. 먼 하늘을 바라보며 가슴을 크게 열어보라.
< 11 >
우리가 새로운 세계를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많이많이 접할수록 운명은 새로워지는 법이다. 무조건 새로운 것을 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취미도 개발해 보고, 음식도 바꿔보고, 노래 취향도 바꿔보고, 안 쓰던 유식한 말도 많이 써보고, 깍쟁이짓도 바꿔보고, 잘났다는 생각도 지워보는 등 엉뚱한 짓을 해봐야 한다.
많이 걸어다는 것, 즉 산책은 아주 좋다. 어떤 특별한 사람의 강의를 들어보면 더욱 좋다. 옷도 바꾸고, 여자처럼 화장도 바꾸고, 안 해보던 곳에 전화도 한 번 해보고, 혼자 여행도 해보라. 할 수 있는 새로운 것에 애써 해보는 것이다.
이 모든 행위는 영토를 넓히거나 새로운 정착지를 찾아 탐험하는 것이다. 밥 한 끼 다르게 먹어도 그것이 곧 인생 탐험이다. 자기의 성향을 고착시키는 것은 운명을 고착시키는 것이니 앉아 있는 곳에서 떠나 먼 곳에 가봐야 한다. 익숙한 것을 좋아하지 말라. 항상 낯선 곳에 도전해야 한다. 새로운 짓을 하면 운명도 반드시 새로워지는 법이다.
< 12 >
하늘 아래 평화롭게 노출되어 있는 호수를 바라보라. 그것이 노출이다. 하늘에 노출한다는 것은 수도인들이 명상을 할 때의 태도인데, 그로써 천지와 더불어 하나가 되는 것이다. 하늘과 나 사이에 내 감정이나 부당한 요구 없이 칸막이를 걷어낸다면 하늘의 섭리가 내게 보다 쉽게 내려올 수 있는 법이다.
개념이 잘 안 잡힐 수도 있을 것이다. ‘자연스럽게’라고 표현하면 어떨까. 남에게 자연스러워야 하듯 스스로에게 자연스러워야 하며, 하늘에게도 자연스러워야 하는 것이다. 자연스럽다는 것은 드넓다는 뜻도 있다. 애써 자기를 꾸미지 않으니 온 세상과 내가 더욱 친할 수 있는 것이다.
이해가 잘 안되면 그저 하늘 아래 연못을 떠올려보자. 연못이 무슨 짓을 하던가! 어린아이가 엄마 품에 안겨 있을 때 거기에 무슨 꾸밈이 있겠는가! 운명을 기다리는 태도는 기다림조차 없는 그저 자연스러움뿐이다.
김승호 / ‘운명수업’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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