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의 절경 보러 떠난 여행에서
얼마 전 “이승의 절경”이라는 문구에 혹해 동경과 호기심으로 가득차 선뜻 중국여행을 떠났다. 추석명절 온 가족이 고향집에 모여 음식을 장만하여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다녀오자마자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과 회포를 풀 새도 없이 돌아와 부랴부랴 둘째를 낳은 큰 아들집에 다녀왔다. 너무 바쁜 일정을 보내고도 피로를 풀지도 못한 채 다음날 버스를 타고 바로 인천공항으로 올라왔다. 3시간의 비행 끝에 서안에 도착해 또 비행기를 타고 구채구(주자이거구)에 도착했다.
구채구는(56개 민족이 모인 다민족 국가) 중국의 소수민족인 장족이 티베트에서 이주해와 9개의 마을을 이루어 해발 2000~300m에 이르는 카르스트 지형 고산에 114개호수와 17개 폭포가 아름다운 매력을 뽐내는 유네스코 자연 유산으로 지정된 동화세계 같은 마을이다. 험준한 산으로 둘러싸인 자연환경 탓에 장족들은 자급자족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외부문명과 단절된 채 살아가던 미지의 세계였다. 지금은 수려한 자연경관 덕분에 명승지가 되어 관광수입이 엄청나다 보니 중국정부로부터 한 가구당 1년에 3천만 원 정도의 돈을 받게 되며 그 보답으로 집집마다 중국국가가 펄럭이고 있었다. 이곳은 거의가 중국 사람인 관광인파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관광지내에서 만 400대가 넘는 셔틀버스가 운행되고 있다. 세계의 중심을 자처하면 대국을 외치는 중국이지만 질서와 외국인에 대한 배려는커녕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아수라장 같았다. 수많은 인파로 우리 팀도 이산가족이 되어 서로 찾느라 애를 먹었다.
다음날은 구채구에서 100Km 떨어진 황룡을 구경했다. 해발 3800m 고산에 위치한 석회암이 용해되면서 침전물이 오랜 기간 퇴적된 카르스트 지형이다. 고산약 4병을 마시고 산소통 2개를 짊어지고 케이블카를 타고 4000m넘게 올라갔다. 3400여개의 에메랄드빛 호수와 푸르고 투명한 물이고인 연못이 설보산 기슭에 V자 계곡으로 장관을 이루며 펼쳐 있었다. 그러나 고산지대라 조금만 빨리 걸어 내려오면 산소통도 소용없이 두통이 나고 비틀거렸다. 버스에 오르자마자 구토가 나서 저녁은 아예 식당문도 들어서지 못했다. 해발 3500m에 위치한 구채구 공항으로 가는 버스 속에서도 산소통을 부여잡고 기진맥진 하는 와중에도 우리 팀들은 저녁메뉴로 처음 맛본 야크고기 얘기로 한참을 떠들었다. 밤늦게 서안의 호텔로 돌아왔으나 속이다 비워진 탓에 잠을 이룰 수 없었는데 마침 가져간 컵라면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고 나니 이제야 아름다운 절경의 보석 같은 기억들이 머릿속에 반짝거렸지만 내일을 위해 어렵사리 잠을 청했다.
다음날은 서안관광에 나섰다. 아테네, 로마, 카이로와 함께 세계 4대 고도로 꼽히며 동서양의 문화교류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실크로드의 출발점이었던 서안에서는 중화민족의 발상지며 중화고대 문명의 진귀한 유적인 세계 8대 불가사의인 “병마용”과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진시황릉”을 구경했다.
오후엔 여산 산록에 있는 “화청지”를 돌아보았다. 초선, 서시, 왕소군과 더불어 중국 4대 미녀인 양귀비와 현종이 사랑을 나누었던 곳으로 유명하다. 밤에는 이 연못에서 당나라시인 백거이가 지은 “장한가”공연을 보았다. 현종황제와 양귀비의 비련에 관한 서사적인 장가로 장예모 감독이 연출한 작품이었다. 호수위에서 여산과 누각을 배경으로 화려한 조명과 아름다운 의상등 멋진 스토리가 엄청난 감동으로 여행의 마지막 밤을 수놓아 주었다.
다음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고산지대의 아찔한 기억으로 10년은 폭삭 늙어버린 듯 했다. 이젠 여행은 절경보다 휴양지에서나 느긋하게 다녀야하나? 나이는 어쩔 수 없다는 씁쓸함이 들지만 아직도 4000m고지의 그 황홀했던 계곡풍경의 절경과 에머랄드빛 호수의 푸르름은 내 눈 속엔 계속 아른거릴 것 같다. 살면서 여유는 없어지고 조급함은 늘 옷 뒷자락을 붙잡고 따라오는 지치는 일상에 가끔은 일탈을 벗어나 떠난 여생은 살아갈 힘을 제공받으면 교훈적이고 필연적인 감동을 받는 것 같다. 지금 얼른 짐을 꾸려 여행을 떠나보는 것은 어떨는지?
김영미(목포시 만호동) / 목포시 주부명예기자
‘비파 뜨락의 향기’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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