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 상식. 심리

시적(詩的) 레토릭(rhetoric)

송담(松潭) 2015. 8. 20. 17:36

 

 

시적(詩的) 레토릭(rhetoric)

 

 

 귀곡자(鬼谷子)의 시론을 소개합니다. ‘귀곡이란 이름만 보면 실제 인물이 아닌 것 같지만 귀신이 아니라 실제 인물입니다. 전국시대의 종횡가로 알려진 장의와 소진의 스승이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기원전 350년 전후로 생존했던 실제 인물입니다. 전국시대는 전환기였습니다. 종법사회, 신분질서가 무너지고 사(), (), 군자(君子)와 같은 신지식인이 등장합니다. 이들이 유세가(遊說家)’이기도 합니다. 이들은 각국의 정치, 경제, 군사 현황에 대해서 해박한 지식과 정보를 가지고 각국의 군주들과 상담하고 설득하는 역할을 합니다. 귀곡자가 이런 사람들의 스승입니다. 이전까지는 외교사절로 주로 친족인 귀족들이 파견되었습니다. 대부분의 귀족들에게 외교 역량이나 대처 능력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열국의 정치적 경제적 상황을 꿰뚫고 있는 이들 신지식인층의 역할이 커집니다. 이 사람들을 행인(行人)’이라고 했습니다. 종횡가도 사실은 외교 전문가 그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행인 그룹을 제자로 둔 사람이 바로 귀곡자압니다.

 

 이 귀곡자가 의외로 시()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시 얘기는 하지 않을 것 같지요? 현실주의자이고 전략가인 그가 시를 이야기하다니요. 귀곡자는 병법은 병사의 배치이고, 시는 언어의 배치이다.”라고 했습니다. 병사의 배치가 전투력을 좌우하듯이, 언어의 배치가 설득력을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적인 레토릭(rhetoric)과 문법을 중요시합니다. 내용을 전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상대방을 설득하는 힘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논어의 첫 구절인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 불역열호(不亦說乎)에서 자는 ()’자로 쓰고 뜻은 ()’로 읽습니다. 귀곡자의 주장은 ()’이 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은 듣는 상대가 기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언의 배치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귀곡자 연구자들에 의하면 소크라테스는 레토릭에서 실패했다고 합니다. 소크라테스 대화법의 전형인 너 자신을 알라!’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상대방을 대단히 불쾌하게 하는 어법입니다. 키 작고 머리도 벗어진 소크라테스는 1년 내내 같은 오버코트를 입고 다녔습니다. 그런 행색으로 던지는 너 자신을 알라!”고 하는 도발적 언어는 불쾌하기 짝이 없습니다. 물론 크게 보면 나 자신에 대한 통절한 깨달음이 기쁨으로 승화하는 경우도 없지 않겠지만, 소크라테스의 대화는 결코 열하지 않습니다.

 

 공자도 그런 점에서 정치 영역에서는 실패한 사람이라고 봅니다. 14년간 여러 나라를 유랑했지만 자리를 얻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정치적 실패가 공자로 하여금 사상가로 비약하게 하고 만세의 목탁으로 남게 했지만, 정치 영역에서는 실패자입니다. 뿐만 아니라 당시에는 사상가로서도 비판받았습니다. 자신의 지식을 꾸며서 어리석은 사람들을 모욕하고(飾智而驚愚) 자기의 행실을 닦는 것은 좋지만 그것으로 다른 사람의 허물을 드러나게 했다는 것입니다.(修身而明汚) 그리고 여러분이 잘 아시는 교언영색(巧言令色)만 하더라도 그렇습니다. 말씨와 외모를 꾸미는 것은 인()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귀곡자는 반대로 그것을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상대방을 설득해야 하고, 설득하기 위해서는 그와의 대화가 기쁜 것이어야 합니다. 자신의 지식과 도덕성이 다른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것이어서는 인간관계에서 실패하게 마련입니다. 귀곡자는 언어를 좋은 그릇에 담아서 상대방에게 기분 나쁘지 않게 전달하는 것, 그것이 성()이라고 했습니다.

 

 시를 이야기하면서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언어의 왜소함입니다. 그 왜소함을 뛰어넘는 다양한 방식을 승인하는 것이 어쩌면 시적 레토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일상생활에서 그러한 레토릭을 다양하게 구사하고 있습니다. ‘귀가 어둡다고 하고 눈이 높다고 합니다. 이러한 시적 감수성을 키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시를 많이 읽어야 합니다. 지금은 시 읽는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다. 암송하는 경우는 더욱 없습니다. 노래는 물론 많이 하지만, 노래는 이미 시가 아니게끔 바뀌고 말았습니다.

 

 초등학생들과 시 암송 모임을 하는 선생님이 계십니다. 비싼 과외 못하는 애들을 모아 놓고 시를 암송하는 공부 모임입니다. 그 중 한 아이의 학교 소풍 때였다고 합니다. 학생들이 앞에 나와서 각기 장기자랑을 하는 순서였습니다. 다른 애들은 나와서 유행가도 부르고 유명 그룹의 춤도 멋지게 흉내 내는 등 화려한 장기자랑을 펼쳐 보였습니다. 그 아이 차례가 되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시 암송 모임에서 공부한 윤동주의 서시를 암송했다고 합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놀랍게도 그것이 그날을 석권했음은 물론이고 그 후 그 가난한 아이가 일약 스타가 되었다고 합니다. 시가 없어지는 세월 속에서 우리가 시를 멋지게 만날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신영복 / ‘담론중에서

 

 * 위글 제목 시적(詩的) 레토릭(rhetoric)’은 독자가 임의로 정하였음.

    

  * 레토릭 : 수사학(修辭學, rhetoric)

      그리스.로마에서 정치연설이나 법정에서 변론의 효과를 올리기 위한 대화법의 연구에서 기원한 학문.

      (속:말장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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