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재기(分財記)
분재기(分財記)는 자손에게 물려줄 재산을 기록한 문서다. 지금까지 발견된 가장 오래된 분재기로는 고려 말의 것이 있지만 일반화 된 것은 조선시대 들어서다. 조선시대에는 웬만한 양반 가문이라고 하면 재산의 상속과 분배를 기록한 분재기를 남겼다.
경국대전의 원칙에 따라 조선 중기인 17세기까지는 아들과 딸에게 차별없이 재산을 균등하게 분배했다. 분배의 대상이 되는 재산은 논·밭과 집 등 부동산은 물론 노비도 포함됐다. 신사임당의 아버지 신명화는 딸만 다섯을 두었는데 ‘장녀 사위 장인우 처의 몫’ ‘2녀 사위 최난수 처의 몫’ 등과 같이 사위의 이름을 병기했다. 신명화 사후, 용인 이씨인 그의 처가 분재하였기 때문에 ‘이씨 분재기’로 불리는 이 문서를 보면 제사를 모실 손자 현룡(율곡 이이의 어린시절 이름)에겐 서울 수진방에 있는 집과 전답을, 묘소를 돌볼 손자 운홍에게는 강릉 북평촌에 있는 집과 전답을 분배했다.
성리학의 거목 퇴계 이황도 분재기를 통해 6천석을 거두는 천석군이었고 367명의 노비를 거느린 재벌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황은 부모로부터 받은 재산과 함께 어머니와 두 아내, 며느리 모두 안동지역 명문사족의 규수로 평등하게 재산을 분배받아 그같은 부를 축적했다고 한다.
호남 가사문학의 원류인 면앙정 송순의 분재기에서도 남녀 차별이 없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송순은 140여명에 달하는 노비 이름까지 모두 기록해 6남2녀의 자녀중 장녀에게는 밭 120마지기와 서당, 노비를 주고 차녀와 첩의 아들 3명에게도 재산을 나눠줬다.
국내 최고 기업인 삼성가의 재산 분할을 둘러싼 분쟁이 점입가경이다. 장남인 이맹희씨를 비롯한 형제자매들이 이건희 회장을 상대로 재산 분할 소송을 제기한데 이어 이번에는 삼성·CJ·신세계 등 범 삼성가가 아버지인 고(故) 이병철 회장의 25주기 추모식을 따로 치르면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조선시대 평범한 가문만도 못한 삼성가의 분재(分財)가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장필수 / 사회부 차장
(2012.11.16 광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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