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가족

부모의 임종을 겪어야 진정한 자식

송담(松潭) 2012. 11. 7. 16:52

 

 

부모의 임종을 겪어야 진정한 자식

 

 

 

 199412월의 한남동은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반짝였고 캐럴에 취한 인파가 거리를 가득 메웠습니다. 그대 나는 순천향병원의 한 입원병동에서 거리를 내다보며 그해의 연말연시를 보냈습니다. 아버지가 위암으로 입원하셨던 것입니다.

 

 “병원에서 위암 같대, 소견서 써줄 테니 큰 병원 가보래직장에서 늘 하던 건강검진을 끝냈는데 의사가 이렇게 말을 했더라는 것입니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습니다. 심지어 풋! 하고 웃음을 터뜨리기까지 한 것 같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다 말기암 환자가 된다 해도 우리 아버지는 절대 그런 병에 걸리지 않을 것이요, 설사 암에 걸린다 해도 우리 아버지는 기적을 불러일으킬 불사조라는 생각에서였습니다.

 

 하지만 의사로부터 앞으로 길면 6개월, 아니면 3개월이라는 판결을 받은 아버지는 정말로 딱 그 숫자만큼의 시간을 살다가 가셨습니다. 마지막으로 병원에 입원하신 동안 아버지는 무섭게 침묵 속으로 자신을 가두었습니다. 이따금 약 드시기를 거부하실 때 엄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요즈음 신약이 많이 개발된다고 하니까... 당신이 이 약을 먹고 조금이라도 버틸 수 있으면 혹시 알아요? 그러니 제발 약을 좀 들어요.”

아버지는 순순히 약을 받아서 삼키셨습니다. 뭔가 희미하게나마 희망을 품고 계셨음에는 틀림없습니다.

 

 

 자식을 엄하게 키우느라 쓸데없는 감정 표현을 극도로 자제한 아버지는 당신의 몸이 무너지는 그 순간순간을 어떻게 견뎌냈을지 모릅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모르핀마저도 그 효과를 내지 못하자 통증을 이기지 못해 침상 위에서 뱅글뱅글 맴을 돌며 이렇게 중얼거렸을 뿐입니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너무 아픈 사람에게는 절망의 감정도 사치입니다. 나는 완고하게 팔짱을 낀 채, 링거 줄에 온몸이 칭칭 동여매어져서 막연히 허공을 바라보며 어떻게 하지를 중얼거리는 아버지를 내려다볼 뿐이었습니다. 이미 10년도 훨씬 지난 일이건만 지금도 문득문득 어떻게 하지라는 그 목소리가 귓가에 쟁쟁합니다.

 

 (...생략...)

 

 철없이 인생을 시작해서 버둥거리며 삶의 고비를 넘어온 부모의 삶은 늘 미완성입니다. 부모의 삶이란 어쩌면 자식이 성장해서 출세하는 것으로 완성되기보다는 자식 앞에서 회한의 눈을 감고서야 비로소 완성되는 것 아닐까. 부모의 임종을 겪는 사람만이 자식으로 완성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도 하게 되었습니다.

 

이미령 / ‘사랑의 마음을 들여다보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