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주는 없다, 독주만 있을 뿐
우리나라의 문화는 술에 매우 관대한 편이다. 술에 취해 저지른 실수는 물론 술에 취한 상태에서 저지른 범죄에 대해서는 법도 관대한 듯하다. 손님접대와 향응제공에는 물론, 귀신을 대접하는 제사에도 술이 빠지지 않는다. 대학은 입학 오리엔테이션부터 폭음으로 시작하고 사회에 나와서도 회식은 1차에서 소주, 2차에서 맥주, 3차에서 폭탄주로 이어지는 게 보통이다. 이러다 보니 국민 1인당 알코올소비량이 세계 1, 2위를 다툰다 해도 전혀 놀랍지가 않다.
많은 사람이 적당한 알코올 섭취가 건강에 유익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건강에 유익할 만큼만 술을 마시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따라서 건강에 유익한 음주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약주(藥酒)라는 것도 있지 않으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그것은 약을 만들기 위한 용도로 사용되어 약에 아주 조금 남아 있는 정도의 술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의료용으로 사용된 술 이외의 모든 술은 아무리 우아하고 고급스럽게 포장되어 있어도 전부 독주(毒酒)라고 보면 된다. 담배보다 더 독한 것이 술이다. 술은 정신과 육체를 모두 파괴하기 때문이다.
술을 마시면 대뇌피질이 마비되어 자제력과 사고력이 둔화한다. 너무 많이 마시면 해마까지 마비되어 필름이 끊기기도 하고, 이런 일이 장기간 지속하면 뇌가 쪼그라들어 기억력장애뿐만 아니라 치매로 진행될 수도 있다.
한의학적으로는 술을 마시게 되면 간에 피가 몰려 간이 붓게 되니 겁을 상실하게 된다고 볼 수 있다. 안하무인이 되고 화를 잘 내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술은 인격장애도 초래한다. 삼국지에 나오는 장비가 대표적인 예라고 할까. 술을 오래 마시면 간에 기름이 차서 붓게 된다. 이를 알코올성 지방간이라고 하는데 이 상태로 오래 지속하면 간경변증으로 발전하여 사망할 수도 있다.
술은 의학적으로 위장염, 담낭염, 췌장염, 당뇨병, 비만, 지방간, 간경화, 치질, 치매, 정신병 등 다양한 질병의 직접적인 원인이다. 동의보감에도 이와 비슷하게 주독은 구토, 발한, 헌데, 딸기코, 설사를 일으키고 심해지면 소갈, 황달, 폐위, 내치, 고창, 실명 등과 그 외 알기 어려운 질병들이 생겨 치료가 어려워지고 근력이 약해지고 정신을 상하며 수명이 단축된다고 하였다. 술에 취해 성행위를 하는 것은 수명을 단축하게 하며, 술에 취해 마차를 타고 달리면 안 된다는 경고까지 있다. 우리 사회가 더욱 건강해지려면 술에 대해 좀더 엄격한 문화를 만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한재복 / 실로암한의원·토마스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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