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의 화살을 맞을지언정
제2의 화살은 맞지 마십시오
저는 6,7살 때쯤 동네 오빠들에게 성추행을 당한 기억이 있습니다. 어느 순간 무의식 속에서 그 사실이 떠올라 두렵고 불안합니다. 스님께서는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다고 하셨는데, 제가 그런 일을 당한 것도 원인이 있으며 제 잘못인지요? 어떻게 하면 제 마음이 편안해질 수 있을까요?
부처님은 우리가 고통을 겪는 근본 원인이 무지(無知)에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기에 12연기(十二緣起)의 첫 번째로 무명(無明)을 들고 있습니다. 무명이란 어리석다. 밝지 못하다는 뜻입니다. 만약 ‘전생에 죄가 많아 현생이 고통스럽다. 이게 숙명이다’라고 여긴다면 현생에서는 그 고통을 줄곧 참고 살아야 마땅합니다. 내가 어려서 성추행을 당한 것도 전생에 지은 나쁜 인연 때문이었다면 나는 현생에 그 상처를 간직한 채 괴롭게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내 어리석음으로 인한 괴로움임을 알아차리고, 그 어리석음과 무지를 깨치면 바로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원효대사의 유명한 일화를 소개해 보겠습니다. 당나라로 유학을 가려던 원효가 잠을 자다가 목이 말라 손을 뻗쳤습니다. 마침 손끝에 물바가지가 잡혀 그것을 벌컥벌컥 시원하게 마셨습니다. 그런데 이튿날 아침에 보니 간밤에 집어 들었던 물박지가 해골이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토하고 말았습니다. 왜 간밤에는 시원하게 마셨는데 오늘 아침에는 토했을까요? 원효는 여기서 깨끗함과 더러움이 내 마음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일체(一切)가 유심조(唯心造)다’, 즉 ‘모든 것이 마음먹기에 달렸다. 한 생각이 일어나니 만법이 일어나고, 한 생각이 사라지니 만법이 사라진다’는 진리를 깨달은 것입니다.
원효가 해골에 든 물을 마시고 토했다는 것은 성추행을 당해서 괴로운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런데 원효는 그 순간에 이 괴로움이 바가지나 물로부터 오는 게 아니라 마음에서 일어난다는 걸 깨침으로써 해탈할 수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똑같은 손인데 내가 싫어하니 괴로움이 되고 내가 좋아하니 사랑이 되는구나. 사랑과 괴로움이, 기쁨과 즐거움이 모두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이구나’하고 깨치면 그런 경험을 통해서 도리어 해탈의 길로 갈 수 있습니다.
불법의 원리대로 말하면 이 몸은 공(空)한 것입니다. 이 몸은 신성한 것도 아니고 더러운 것도 아니고 공한 것입니다. 제법(諸法)이 공하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 몸에 집착함으로써 결혼을 하기 전에는 신성한 몸이고 결혼을 하면 더러워진다든지, 남자가 내 몸에 손을 대기 전까지는 신성한 몸이고 손이 한 번 닿으면 더러운 몸이 된다든지 하는, 정(淨)과 부정(不淨)은 모두 우리의 마음에서 일어납니다. 우리의 몸은 아무리 성스럽게 하려고 해도 성스러워질 수 없고 아무리 더럽히려 해도 더러워질 수가 없습니다. 몸은 단지 몸일 뿐입니다.
만약 어렸을 때의 동네 오빠들을 미워한다면, 그것은 그들이 내게 해를 끼쳤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하지만 제법이 공한 이치를 깨달으면 그들이 나를 더럽힐 수 가 없기 때문에 미워할 것도 용서할 것도 없습니다. 그것만이 내가 그들의 행위로부터 완전히 해방되는 길입니다.
그러니까 질문하신 분은 그때의 일을 하나의 단순한 사고라고 보시시 바랍니다. 그게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치자면 제1의 화살입니다. 그 제1의 화살은 물론 안 맞는 게 좋지만 본의 아니게 맞고 말았습니다. 내 의지나 행위와는 상관없이 그냥 길가다가 화살을 맞은 겁니다. 화살을 맞았으면 빨리 화살을 뽑아야 합니다. 그런데 화살을 뽑지 않고 그 화살을 가지고 논하다 보면 제2의 화살을 맞을 수 있습니다. 경전에는 제1의 화살은 맞을지언정 제2의 화살은 맞지 말라고 되어 있습니다.
어릴 때 그런 경험이 있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그것 때문에 계속 괴로워한다면 그 괴로움은 바로 자신이 만든 것입니다. 그게 제2의 화살입니다. 제법(諸法)의 공(空)한 이치를 깨쳐서 ‘내가 어리석은 생각에 빠져있구나. 그래서 나만 괴로웠구나’라고 생각하시는 게 좋습니다.
법륜 / ‘날마다 웃는 집’중에서(발췌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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