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리에선 언제나 신혼
꽤 오랜만의 모임이었다. 먹고사는데 바쁘고 시간 맞추기 바빠 일 년에 한두 번 만나기도 어려웠던 모임이었는데 찬바람 불기 시작하니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만나자는 연락이 오가기 시작했다.
결혼 10년차에 가까워진 그녀들은 하나같이 생활에 치인 얼굴로 나타나 묵은 수다를 풀어놓았다. 온갖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것이 오랜 친구의 장점이 아니겠는가. 그 온갖 이야기 중에는 물론 남편과의 잠자리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잠자리 이야기를 하는 패턴도 나이가 들자 조금씩 달라졌다.
예전엔 흥미를 가지고 음담패설을 속닥거리던 수준이었는데 지금은 ‘애는 공부 잘하고?’하고 물을 때처럼 무심히 ‘남편하곤 자주 하고?’ 따위의 질문을 던진다.
답을 모아보면 하나같이 잠자리에 그다지 만족스런 상태가 아니다. ‘너무 좋아’를 연발하는 이는 한 명도 없었고 그나마 좋다는 이도 ‘나쁘지 않은’ 수준이라는 것이다. 시큰둥한 대답만 이어지던 중에 한 친구가 말했다.
“우리 남편은 아직 신혼이야.”
일제히 시선이 그 친구를 향했다. 그녀들 중 제일 일찍 결혼해, 결혼 연차도 가장 긴 이였다.
“그렇게 좋아?”
친구는 피식 웃더니 이렇게 말한다.
“그게 아니고. 신혼 때도 어설펐는데 지금도 여전히 어설프다고.” 다들 표정이 ‘그럼 그렇지.’로 바뀐다.
“하면 할수록 는다는 것도 아닌가봐.
어쩜 그렇게 안 느니? 지금도 여자랑 처음 자는 어린 총각처럼 5분을 못 넘겨.”
“우리 남편은 5분은 넘기는데, 내가 만족할 때까지 버틴 적이 없어. 나도 속으로 어쩌면 이렇게 안 늘까? 생각 한다니까.”
“신혼 땐 마음이라도 뜨거워서 어설퍼도 참고 넘어갔지.
그런데 이제 마음은 식었는데 몸까지 어설프니까 참을 수가 없네.”
이십대에는 누구나 다 결혼을 하면 멋진 성생활을 즐기며 살게 될 거라 기대한다. 그러다 결혼을 한 뒤, 내 남편이 변강쇠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지만 그때도 희망을 포기하지는 않는다.
나이가 들면 신선함과 열정은 사라지지만, 대신 기술력이 향상되고 서로 몸에 익숙해져 정말 괜찮은 복식 경기를 펼칠 수 있으리라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전히 남편이나 아내나 기술력은 제자리고, 얻은 것은 익숙함이 아니라 지겨움뿐이라는 소리다.
좋아지리란 기대감마저 사라진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남은 인생도 별다른 재미(?)없이 그냥 이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
소설이나 영화처럼 좋아서 깜박 넘어가는 수준은 아니더라도, 다음날 아침 콧노래를 부르며 돼지고기를 볶을 정도의 만족감은 얻었으면 하는 것이 중년에 다가가는 그녀들의 바람이었다.
“남편이 폭포수 아래에서 정기를 받아올 리도 없고, 그렇다고 내가 시대의 명기가 되어 남편을 단련시킬 일도 없고, 그냥 이렇게 살게 되겠지.”
“가끔은 빨리 늙어버렸음 좋겠다는 생각도 들어.
피가 식어야 마음 상할 일도 없지.”
오랜만에 솔직해진 그녀들의 이야기가 이어지던 중, 한 친구가 주섬주섬 일어나기 시작했다. “저녁 할 시간이야. 가야겠다.” 찻집을 나서면서 친구들은 이런 이야기를 나눈다.
“요즘 남편 밥맛이 없다는데 뭘 해주지?”, “경기가 안 좋아서 일할 의욕이 없대. 불쌍해 죽겠어.”
어느새 남편을 향한 연민이 가득한 아내들로 바뀐 뒤 하나 둘 총총히 흩어지는 그녀들. 뭐라고 푸념들은 하지만, 그녀들의 마음만큼은 아직도 신혼 그대로인지도 모른다.
박소현 / 연애 칼럼 니스트
(2008.11.14 광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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