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詩, 글

이탈한 자가 문득 / 김중식

송담(松潭) 2008. 8. 25. 19:12

 

27002

 

이탈한 자가 문득 / 김중식



우리는 어디로 갔다가 어디서 돌아왔느냐

자기의 꼬리를 물고 뱅뱅 돌았을 뿐이다

대낮보다 찬란한 태양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한다

태양보다 냉철한 뭇별들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하므로

가는 곳만 가고 아는 것만 알 뿐이다

집도 절도 죽도 밥도 다 떨어져 빈 몸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보았다

단 한 번 궤도를 이탈함으로써

두번 다시 궤도에 진입하지 못할지라도

캄캄한 하늘에 획을 긋는 별, 그 똥,

짧지만, 그래도 획을 그을 수 있는,

포기한 자 그래서 이탈한 자가

문득 자유롭다는 것을



낙오하지 않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왔는데

경쟁에서 밀려나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의 비애를

무엇으로 달래야 할까.

“집도 절도 죽도 밥도 다 떨어져 빈 몸으로 돌아” 온

적거지는 바로 나 자신이다.

파산하고 패가한 뒤에야 자신을 만나다니!

그동안 적조했던 자기 자신과의 대면을 통해

‘나’는 밤하늘을 가르며 지나가는 별을 바라본다.

놓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던 줄을 툭, 놓아버린 별은

그야말로 인생 막장까지 가서

볼장 다 본 ‘똥’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자신이 동의한 바 없는 질서에

파산신고를 낸 뒤 추락하는 별은

붙박이별들이 누릴 수 없는 자유를 누리는 섬광이 된다.

그래서 ‘똥’임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별똥별’이다.


포기라면 그것은 눈부신 포기고,

체념이라면 그것은 열정적 체념이다.

사실, 우리들의 천체엔

“가는 곳만 가고 아는 것만 알 뿐”인

뜨뜻미지근한 삶으로부터 이탈한 뒤

스스로 하나의 궤도가 되어 귀환한

항성들이 드물지 않다.

청춘에 파산신고를 내고 낙향하는 벗과 함께

소주병을 기울이며 바라보던 서울 하늘에도

별이 떠 있었던가.


두 눈에 맺혀 있다 떨어지던 그 한 방울이

요즘은 나를 위로한다.


내려와서 쉬었다 가라고,

평상에 누워 별똥이 스칠 때

어린 날처럼 소원이라도 함께 빌어보자고.

 


손택수 / 시인

(2008.8.25 한국일보)

 

 

 

자신이 동의한 바 없는 질서에

파산신고를 낸 뒤 추락하는 별은

붙박이별들이 누릴 수 없는 자유를 누리는 섬광이 된다.

그래서 ‘똥’임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별똥별’이다.

 

청춘에 파산신고를 내고 낙향하는 벗과 함께

소주병을 기울이며 바라보던 서울 하늘에도

별이 떠 있었던가.

 

(‘똥’임에도 불구하고 별똥별이라니

스스로 위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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