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행동 민주주의
미국 사회의 소득 격차를 어틀랜틱 먼슬리는 2001년 재미있는 키 그림으로 표현했다. 전체를 100으로 봤을 때 하위 10% 선의 사람은 키가 손뼘만한 18㎝에 불과했고, 50% 수준이 돼도 성인의 평균보다 작은 125㎝에 그쳤다. 65%를 넘어서야 175㎝의 평균 키를 가진 사람이 나타났다. 92.5%를 넘어서자 키가 4.2m에 이르렀고, 맨 마지막인 99.995% 선에선 키가 자그마치 284m나 되는 슈퍼 거인이 등장했다.
이런 불평등 사회에서 주권재민, 보통선거, 법의 지배라는 대의민주주의의 원칙만으로 참된 민주주의가 가능할까? 현대 정치이론의 권위자인 에이프릴 카터는 절차민주주의가 완성되는 순간 그것은 화석화된 민주주의로 전락할 수 있으며, 대의정치라는 형식만 남은 곳에서 자본과 권력에 맞선 보통 사람에게 허용된 거의 유일한 민주적 안전장치가 ‘직접행동’이라고 한다. 사람들이 정부 또는 기업 같은 힘 있는 집단에 시위와 파업, 연좌농성, 단식투쟁, 불매운동, 납세 거부, 시민 불복종 등의 형태로 압력을 가하는 것을 뜻한다.
우리 사회는 민주화 이후 최대 규모의 직접행동을 체험하고 있지만, 민주주의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려면 모든 갈등과 균열은 궁극적으로 대의정치라는 제도적 장치 속으로 수렴돼야 한다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다. 직접행동을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이나 탈법 행위로 보는 시각도 한쪽에선 여전하다.
그렇지만 통상적 민주주의는 전지구적 현실의 갈등을 해소하기에 미흡하며, 직접행동은 민주주의의 결손 지점에서 나타난다. 좀 시끄럽고 경미한 폭력이 발생하는 경우가 있어도 대의민주주의의 형식성을 초월해 ‘실질성’을 강화하는 적극적이고 정상적인 정치 행위다. 존 듀이의 말대로 민주주의는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라 많고 적고의 문제며, 더 많은 민주주의를 행하는 수밖에 없다. 대의민주주의의 값진 보완재를 컨테이너 박스로 대접한 것은 심했다.
정영무 / 논설위원
(2008.6.12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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