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란?

오선생은 언제 오는가?

송담(松潭) 2008. 5. 9. 15:53
 

 

오선생은 언제 오는가?


아내에게 남편은 첫 남자였다. 스무 살 나이에 복학생이던 남편을 처음 만나 연애를 시작해, 대학을 졸업하던 해인 스물넷에 결혼했기 때문에 다른 남자를 만날 기회조차 없었다. 덕분에 싱글친구도 적잖은 나이에 그녀는 벌써 두 아이의 학부형이다. 남편은 점잖고 성실한 남자였기에 살면서 딱히 불만을 가져 본 적은 거의 없었다. 다만, 너무 점잖고 성실하다 보니 특별한 재미가 없다는 것이 흠이라면 흠이었다. 잠자리에서도 남편은 점잖고 성실하게 굴었다. 점잖게 키스하고 점잖게 가슴 만지고 점잖게 옷을 벗겼다.


그런데 그녀는 시간이 지날수록 잠자리에서만큼은 점잖은 것과 성실한 것이 함께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직장에서 성실하면 진급을 하고 월급이 오르는 것처럼 잠자리에서도 정말 성실하다면 그만큼의 효과가 와야 했다. 그런데 아내는 결과 혹은 효과를 보지 못했다. 결과 혹은 효과의 결정적인 증거라 할 수 있는 ‘오르가슴’을 한 번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한테 문제가 있을지 몰라. 불감증인지도 모르지.’ 처음에는 이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불감증이라 하기에 다소 문제가 있는 것이, 어쩌다 좀 야한 영화를 보다 흥분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며 흥분하는 몸이, 남편과의 섹스에서는 그만큼도 흥분하지 못하니 그게 문제였다.


그런데 최근에 대학동창들과 다시 연락이 닿아 만나게 되면서, 그녀는 자신의 부부관계에 또 한번 회의를 품게 되었다.

한번은 한 친구가 어디서 듣고 왔는지 결혼한 여자들의 40%가 오르가슴을 느껴본 적이 없다며 안됐다는 듯 말했는데, 그녀는 속으로 ‘어머, 그럼 60%나 오르가슴을 느껴봤단 말이야?’ 하며 깜짝 놀라고 말았다. 물론 자신도 그 60%에 속하는 척하는 것을 잊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어지는 친구들의 이야기에 저절로 기가 죽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나는 할 때마다 ‘신이 우리를 정말 사랑하셔서 이런 느낌을 주는구나’ 싶다니까.” 신의 사랑을 듬뿍 느낄 수 있는 그 느낌이 어떤 것인지, 그녀는 정말 궁금했다.

“오선생이 오면 온몸이 녹아내리는 것 같아.”

오르가슴을 오선생이라고 부르는 것도 그녀는 그날 처음 알았다.

“진짜 별이 보인다니까.”

“나는 세포분열이 다시 일어나는 것 같아. 그래서 그런가? 한번 하고나면 피부가 매끈해 져.”

그녀는 오르가슴을 구체적으로 경험해 본 적이 없어서 어떻게 말로 설명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그냥 어색하게 맞장구만 칠 뿐이었다.


그날 밤, 집으로 돌아온 그녀는 늦어진다는 남편을 기다리며, 식탁에 멍하니 앉아있었다. 머릿속에는 온통 친구들과 나눈 이야기뿐이었다. 지금껏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것도 억울하지만, 어쩌면 죽을 때까지 느껴보지 못할 거라 생각하니 갑자기 사는 게 다 허망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녀는 빈 종이 위에 자신도 모르게 ‘오선생’이라고 쓰고는 ‘오선생은 언제 오시나, 어떻게 오시나….’하고 낙서를 했다.

남편은 오선생을 만났을까? 오선생을 만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나? 나한테 문제가 있나? 혼자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초인종이 울렸다. 옷을 갈아입고 부엌으로 들어선 남편은 낙서에 눈길을 주더니 한참을 들여다본다. 그녀는 속이 뜨끔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이참에 남편과 진지한 대화를 해 볼 수 있겠다는 한 가닥 희망이 생겼다. 낙서를 읽은 남편은 그녀를 빤히 쳐다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애들 과외 선생님 바꾸려고? 오선생이 실력이 좋은가 보지?” 힘이 쭉 빠진 그녀는 볼멘소리로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좋지, 아주 끝내주지. 만나기가 힘들어서 그렇지.”



박소현 / 연애칼럼 니스트

(2008.5.9 광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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