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칼럼, 정의

탄핵 골든타임, 섣부른 개헌론을 경계함

송담(松潭) 2024. 12. 20. 06:19

탄핵 골든타임, 섣부른 개헌론을 경계함

 

 

자유를 내세웠지만 내심으론 독재자를 꿈꾸던 윤석열 대통령이 탄핵소추되었다. 위대한 대한국민들이 저항권을 성공적으로 행사한 결실이다. 헌정의 중대 고비마다 민주화를 직접 쟁취해온 국민이 거둔 또 한 번의 승리다. 군과 경찰의 봉쇄시도에도 계엄해제의 고삐를 당겨 국민대표의 역할을 제대로 해낸 국회도 칭찬해야 마땅하다. 아직도 내란죄 피의자의 손을 놓지 못하고 내란 방조의 굴레를 자임하고 있는 국민의힘 다수 국회의원들을 제외하고.

 

이번 사태를 대통령제 탓으로 돌리려는 시각이 있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내란의 현실을 회피하면서 개헌론을 꺼내든 것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내란혐의자들에 대한 조사와 책임추궁에 집중해야 할 중대한 ‘헌법의 순간’에 섣부른 개헌론은 경계해야 마땅하다. 어설픈 권력구조 개헌론으로 헌정회복의 골든타임을 결정적으로 지체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번 사태의 근본원인을 정확히 진단하고 인과관계를 충분히 따져서 개헌을 비롯해 미래를 향한 대응을 모색하는 것이 순서다.

 

느닷없는 비상계엄 사태의 본질은 헌법이 무시되고, 헌법이 유린된 것이지, 헌법의 권력구조가 직접적인 원인이 아니다. 검찰 등 권력기관을 사유화하여 사정정국의 공안통치로 일관해오다 친위쿠데타에 나선 윤석열 대통령의 시대착오적 만행을 헌법 탓으로 돌리는 것은 현상에 매몰된 착시일 수 있다. 예컨대, 내각제나 이원정부제를 한들 위헌·위법한 계엄선포를 막을 수 있나? 내각제나 이원정부제에선 국회와 정부 모두가 특정 정당에 장악되는데 국민의힘처럼 내란 방조의 오명을 벗기보다 권력유지에만 혈안이 된 극우정당에 그런 전권을 맡길 수 있나? 그랬다간 비상계엄을 할 필요도 없이, 굳이 법치를 부인하는 ‘시행령 통치’를 할 이유도 없이, 민주공화국은 망상에 빠진 독재자나 위헌적 정당의 손에 넘어갔을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이번 친위쿠데타는 대통령제에서 국회만이라도 국민의 편에 있었기에 막을 수 있지 않았는가?

 

물론 대통령과 국회, 거대정당으로 양극화된 현행 체제가 완벽한 것은 아니다. 극한대립이 일상화되면서 국력의 낭비나 비효율성이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할 개헌론은 여전히 유효하다. 다만 지금 이 헌정회복의 골든타임에 당장 할 일은 아니라는 말이다. 지금은 나라를 21세기의 선도국에서 20세기 후진국으로 퇴행시킨 내란사태의 조사와 책임추궁에 집중하면서 윤 대통령의 어처구니없는 자해행위로 위기를 맞은 경제와 외교를 하루빨리 되살릴 수 있는 국정안정에 집중해야 할 때다. 독재의 위험과 정치의 비효율성이라는 딜레마를 모두 해결할 수 있는 개헌 등 슬기로운 국정개혁의 과제는 놀란 가슴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다스린 국민들이 주도하는 충분한 숙의과정을 거쳐 찬찬히 논의해야 한다. 우물에 가서 숭늉 찾듯이 탄핵의 골든타임을 함부로 허비해서는 정말 안 된다.

 

한편 이번 사태의 진짜 원인을 성찰하는 일은 탄핵의 골든타임을 지키는 데 매우 긴요하다. 이번 친위쿠데타는 국회를 반국가세력의 온상지로 망상한 시대착오적 권력중독자가 민주공화적이어야 할 대통령직을 제왕적으로 운영하려 한 헌법위반에서 비롯되었다. 그 배경은 대통령제가 아니라 민주공화국 원리에 맞지 않게 사유화된 검찰이나 경찰 등 권력기관의 발호에 있다. 야당이나 노동계 등 시민사회를 반국가세력으로 몬 힘이 어디에서 나왔나? 거부밖에 할 게 없는 식물대통령에게서?

 

일상적 사정권력의 동원만으로는 힘에 부친 대통령이 군부마저 끌어들였다는 사실은 역설적이게도 우리의 헌법체제가 기본적인 통제력은 발휘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오히려 그동안 독재자를 꿈꾸는 대통령의 손발이 되었던 검찰, 경찰, 정보기관 등 권력기관의 행태가 헌정 위기의 뿌리임을 직시해야 한다. 이들의 공권력이 좀 더 분권되고 법원에 의해 효과적으로 통제되었더라면 이번 사태를 예방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동안 검찰개혁, 경찰개혁, 정보기관개혁을 거부해온 정당이 국민의힘이라는 점은 이 정당이 내란 방조마저 불사하는 행태와 맥이 닿아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대통령 윤석열의 망상이 개인적인 것만이 아니라 우리 정치에 뿌리내린 극우정당의 정체성과 닿아 있으며 이들이 정치화된 검찰 등 권력기관과 결탁하고 있음을 더 이상 외면해선 안 된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마저 부정하는 내란 방조자들이 정략적 목적으로 개헌론을 들먹일 자격과 공간을 주지 않도록 아무리 경계해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김종철 /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024.12.20 경향신문)

 

< 2 >

 

나는 반딧불

 

 

“나는 내가 빛나는 별인 줄 알았어요/ 한 번도 의심한 적 없었죠/ 몰랐어요. 난 내가 벌레라는 것을/ 그래도 괜찮아 난 눈부시니까/ 하늘에서 떨어진 별인 줄 알았어요/ 소원을 들어주는 작은 별/ 몰랐어요 난 내가 개똥벌레라는 것을/ 그래도 괜찮아 나는 빛날 테니까” - ‘나는 반딧불’ 일부

 

가수 황가람이 부르는 이 노래는 수능철을 전후하여 역주행하는 노래다. ‘수능 위로곡’으로 불리면서 노래방 순위가 급상승한다. ‘별인 줄 알았지만 개똥벌레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도 괜찮다. 나는 여전히 빛날 테니까.’ 단순하지만 함축적인 노랫말은 수능을 본 수험생이 아니라도 춥고 힘겨운 이 시대들 살아가는 많은 이들에게 위로를 준다.

 

이 노래를 처음 발표한 이는 ‘중식이 밴드’였다. ‘N포세대 남성의 대변자’를 자처하는 인디밴드의 리더 정중식이 만들고 불렀다. 그룹 이름은 점심식사를 뜻하는 ‘중식(中食)’에서 따왔다고 한다. Mnet의 <슈퍼스타K> 시즌7에서 이름을 알린 이들은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노래를 주로 부르는 록밴드다.

 

이 노래를 리메이크한 황가람은 그룹 피노키오의 리드싱어다. 허스키한 음색과 담담한 창법으로 대중성을 확보하면서 이 노래를 ‘국민위로송’ 반열에 올려놓았다. 좀 더 거슬러 올라가자면 신형원의 ‘개똥벌레’도 또 다른 위로곡이었다. “마음을 다 주어도 친구가 없네/ 사랑하고 싶지만 마음뿐인 걸/ 나는 개똥벌레 어쩔 수 없네/ 손을 잡고 싶지만 모두 떠나가네”라고 노래한다.

 

오늘 응원봉을 들고 광장으로 몰려나온 수많은 개똥벌레들이 역사의 물꼬를 바꾼다. 굳이 형설지공(螢雪之功)을 소환하지 않더라도 작은 빛을 모아서 거대한 불기둥을 만들 수 있다는 걸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오광수 / 대중음악평론가

(2024.12.23 경향신문)

 

 

'명칼럼, 정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주여 어디로 임하셨나이까  (3) 2024.12.25
‘우리’ 자신에게로  (0) 2024.12.18
기민과 탄핵  (2) 2024.11.20
100세 시대, ‘생애주기’를 창안하라!  (12) 2024.10.14
패싱, 내가 나일 수 없는 세계  (0) 2021.1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