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벚꽃 구간

송담(松潭) 2024. 12. 14. 10:47

벚꽃 구간

 

“모든 인생은 고통이다."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의 말입니다. 맞습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각자의 욕망이 있고, 그것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경쟁을 피할 수 없고, 그러니 본능이 원치 않는 일들을 해내야 합니다. 태생적으로 우리의 인생은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인생은 고통이 기본값입니다. 오히려 행복이 특별한 이벤트인 거죠. 누구나 일어나기 싫은 마음으로 일어나 나를 위해 또는 가족을 위해 밥벌이를 하죠. 하기 싫은 공부를 하고 견디기 힘든 테스트를 견딥니다.

 

매일이 축제인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어요. 우리가 할 일은, 왜 다들 행복해 보이는데 나는 대체로 고통스러운가 괴로워할 게 아니라, 누구에게나 기본값인 고통 속에서 가끔씩 찾아오는 행복에 감사하며 그 행복을 힘껏 음미하는 겁니다. 행복함을 기본이라 생각하면, 조금만 불행해도 그것을 견딜 수 없게 됩니다.

 

'벗꽃 구간'이라는 말 들어보셨나요? 아마 못 들어보셨을 겁니다. 제가 만든 말이거든요. 1년이란 시간을 빠르게 놀려서 60초 프레임 안에 집어넣는다고 생각해 보세요. 365일이 60초에 늘어가는 거니 6일이 1초정도로 줄어들겠군요. 그럼 2초에서 3초, 잠깐 세상이 환하게 밝아지는 구간이 존재합니다. 봄 벚꽃이 피었다 지는 구간이죠. 지금부터가 진짜 봄이라는 것을 알리려고 자연이 스위치를 켜듯, 남쪽에서부터 차례로 연분홍 빛이 올라봅니다.

 

우리 인생에도 벚꽃 구간이 필요합니다. 아주 작은 틈으로 들어온 빛이 어둠을 밀쳐내듯, 그런 순간순간의 힘에 기대어 우리는 견뎌야 할 것을 더 잘 견뎌낼 수 있습니다. 벚꽃 구간은 길이도, 형태도 다양하게 존재합니다. 1년을 준비해서 떠나는 휴가. 완벽한 벚꽃 구간이죠. 사랑하는 친구와의 맛집 탐방. 생각만 해도 행복하네요.

 

어찌 매 순간 행복할 수 있을까요. 인생의 무게에 주눅 들지 말고, 참았다 마시는 커피처럼, 가끔 볕 좋은 곳에 의자 하나 내놓는 것처럼, 의도적으로 행복의 구간을 설정해 보세요. 벚꽃 구간 그 빛으로 쉽지 않은 시대를 건너고, 덕분에 맑아진 눈으로 가끔씩 찾아오는 해상도 높은 순간들을 포착하고, 더 깊숙이 음미하길 바랍니다. 남과 나를 비교하며 왜 나는 매일이 축제가 아닐까 실망하지 않고, 단정한 쌀밥과 된장국 사이에 가끔 특별한 음식들이 놓이는 식탁처럼, 꾸준히 행복한 하루를 맞이하시길 바랍니다.

 

『코스모스』의 저자 칼 세이건 Carl Sagan은 말합니다. 우리는 결코 우주라는 드라마의 주인공이 아니라고요. 맞는 말이죠. 우주의 시간에서 우리는 잠깐 반짝이고 사라지는 불빛같은 존재입니다. 잠깐이란 말이 민망할 정도로 명멸하는 점일 뿐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이 짧은 시간을 마음껏 음미해야 해요. 반짝이다 사라질 점에게, 내일로 미룰 시간이 어디 있나요? 최선을 다해 우리는 눈앞에 놓인 세상을 즐겨야 해요. 요즘 내내 드는 생각입니다.

 

아이가 자라는 모습.

제때 마시는 커피 한 모금.

아무렇지 않은 동료들과의 점심.

가끔씩 찾아오는 짧은 성취.

다른 도시의 음식과 냄새.

차창 밖으로 손 흔드는 아이.

볼륨을 투둑 올리게 만드는 음악.

다시 오지 않을 것이 분명한 순간들.

 

유병욱 / ‘인생의 해상도’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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