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간에 대화가 필요한 이유
내가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가족을 꾸리고 30년 넘게 살면서 무섭도록 공감하는 말이 하나 있다. 사랑의 반대말은 미움이 아니다, 사랑의 반대말은 무관심이다. 우리들의 삶과 인간관계에 가장 파괴적인 힘을 발휘하는 것이 바로 무관심이다.
만약 남편은, 아내는, 딸은 언제든 나를 이해해 줄 거야, 라고 생각하며 관계 유지를 위해 아무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그 관계는 죽어 버린다. 관계야말로 관심을 가지고 제때 물을 주고, 항상 보살펴야 할 씨앗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가까운 사이일수록 우리는 노력하지 않는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상대방이 나를 이해해 주기를 바라며, 심지어 이것을 ‘사랑’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단언컨대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말하지 않는데 어찌 알겠는가.
우리는 모른다. 남편을 모르고, 아내를 모르며, 아이들을 모른다.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도 그의 머릿속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절대로 알 수 없다. 그래서 물어보는 수밖에 없다. 그것이 바로 가까운 사이 일수록 대화가 더 필요한 이유다.
그제의 남편과 오늘의 남편은 다르다. 그제의 아내와 오늘의 아내는 다르다. 하루 사이에 그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고,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게 됐는지 잠자코 있는 부부는 정녕 모른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물어야 한다. 당신의 걱정은 무엇이고 내가 무엇을 도울 수 있는지. 그리고 상대방에게 말해 줘야한다. 지금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이 무엇이고, 그래서 당신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그렇게 대화를 나누며 서로에 대해 더 알아가야 한다.
언젠가 비디오아트의 거장 백남준에 대해서 아내인 구보타 시게코가 쓴 책 <나의 사랑, 백남준>을 읽다가 나를 반성하게 만든 문장이 있다.
‘사랑하고 존경 한다’
위대한 부인이고
위대한 요리사이고
위대한 간호사이고
위대한 작가이고
그리고 이런 내용이 100페이지는 더 계속 되는
구보타 시게코를 나는 사랑하고 존경 한다.
나를 멈추게 만든 것은 백남준이 아내를 사랑하고 존경한다고 말한 부분이 아니다. 100페이지 넘게 아내에 대해 쓸 말이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과연 남편에 대해, 아들과 딸에 대해 100페이지를 넘어서 계속 쓸 말이 있을까? 그만큼 내가 그들에 대해 많이 알고 있는지 갑자기 자신이 없어졌다.
‘내 남편은 의사이고, 두 아이의 아빠이고, 장남이며 책임감이 강한 리더이다’라는 말로 시작은 할 수 있지만 그 나머지는 어떻게 채워야 할까? 남편과 아이들은 나에 대해 어느 만큼의 페이지를 채울 수 있을까?
당신에게도 묻고 싶다, 당신이 지금 가장 가깝다고 생각하는 그에 대해 채울 수 있는 페이지가 어느 만큼 되느냐고 말이다.
김혜남 / ‘당신과 나 사이’중에서
'부부,가족'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수고했고 고맙고 미안하다” (0) | 2018.11.15 |
---|---|
산등성이 (0) | 2018.05.21 |
광장(匡章)은 불효자인가 (0) | 2018.05.08 |
부모와 자식, 두 개의 세상 (0) | 2018.01.17 |
부부 워크숍 (0) | 2017.12.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