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과 인권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집이 필요하고 주거권은 인권의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이다. 따라서 인권의 차원에서 보자면 국가나 사회는 집이 없어서 노숙하는 사람이 없도록 할 의무가 있으며, 집이 없는 사람은 인권의 이름으로 국가에 그것을 요구할 수 있다. 하지만 한 사람이 330제곱미터(약 100평)가 넘는 아파트에서 살고 싶다고 인권의 이름으로 그것을 요구한다면, 이것은 인권을 잘못 적용한 예이다. 물론 이처럼 주거권을 과도하게 해석하여 주장하는 경우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재산권과 관련된 측면에서는 이와 유사한 사례가 빈번히 발생한다. 우리 사회에서 집은 두 가지 측면에서 의미를 갖는다. 한편으로는 살아가는 공간으로서 의미를 갖고, 다른 한편에서는 재산으로서 의미를 갖는다. 전자는 주거권과 관련되어 있으며, 후자는 재산권과 연결된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집을 주거권의 측면에서 바라봐서 종합부동산세법을 신설하였다. 이 법을 통해서 집을 부의 축적수단으로 삼는 세대에 일침을 가하려 한 것이다. 그런데 정권이 바뀌자 이 법을 유야무야로 만들어 버렸다. 재산권을 보호한다는 것이 명분이었다. 하지만 여기에 재산권을 내세우는 것은 인권의 근본 원칙과 배치되는 것이다. 즉 인권은 최소한의 것, 최소한의 양을 보장하는 것이다. 종합부동산법에 의해 세금을 물게 될 사람이 그 때문에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없게 된다면, 그의 재산은 인권의 이름으로 보호되어야 한다. 하지만 재산을 보유하고 그것을 통해서 더 많은 재산을 확보하려는 의도로 부동산에 투자한 사람이 재산권을 근거로 자기 재산을 보호하려 한다면 이는 인권의 원칙에서 벗어난다. 더구나 이러한 재산권은 다른 사람의 주거권을 침해하면서 확보한 권리이다. 이 경우에 재산권을 주장하는 것은 인권에 포함되는 권리들 사이의 선후 문제라는 측면에서도 정당화 될 수 없다.
인권은 사회적 약자가 인간적인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 사회에 요구하는 최소한의 권리이다. 만약 이미 권리를 충분히 누리고 있는 사람이 그것을 공고화하거나 더욱 많이 누리기 위한 수단으로서 인권을 사용한다면, 그것은 인권의 원칙에서 위배된다.
구태환 / 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인권과 사회, 삶’중에서
* 위 글 제목 ‘집과 인권’은 독자가 임의로 정하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