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민심서(牧民心書)
몸이 마비되어 불구가 된 것을 한의학에선 불인(不仁)이라 이르니, 인(仁)이란 곧 혈기가 잘 순환되는 건강 상태를 뜻한다. 역시 유교의 키워드 ‘인’도 국가의 기운이 막히지 않고 원활하게 소통되는 상태라고 봐도 좋다. 그렇다면 유교정치의 성패는 곧 ‘소통’에 사활이 걸린다. 퇴계 이황이 지방 수령의 역할을 “임금의 뜻을 아래에 베풀고, 백성의 원망을 위로 전달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그 불능을 자책하며 물러나기를 청한 것도 이런 맥락위에 있다.
지방 행정 가이드북이자 매뉴얼
다산 정약용은 당시 나라를 중풍이 들어 온몸이 마비된 위급 환자로 진단했다. 이에 그 긴급 처방으로 내놓은 것이 48권 16책으로 이뤄진 ≪목민심서≫다. 이 책은 곧 국가 건강 진단서요. 또 각 분야 질환에 대한 구급방이라 할 것이다. 한데 그 밑바탕에는 본질적인 혁신이 없고는 나라의 생존이 어려우리라는 비관이 깔려있다.
하면 국가적 마비 상태의 기혈을 뚫을 자는 누구인가. 지방 수령이야말로 그 침(鍼)이요, 뜸이다. 그는 “수령이란 곧 고대국가의 제후에 해당한다.”고 그 자율적 권능을 치켜세우면서 위와 아래를 소통시키는 본래 기능을 회복하길 촉구한다. 실제로야 지방 수령 스스로가 소통을 가로막는 ‘벽’으로 굳어 있었지만, 그럼에도 ≪목민심서≫의 주인공은 수령들이다. 이 책의 대체적 스토리는 ‘선량한’수령과 ‘사악한’ 아전들의 쟁투라는 설화적 구도로 짜여있다. 그리고 감사(관찰사)와 중앙의 권문세가는 아전들과 결탁하여 수령을 굴복시키는 운명적 배경으로 개입한다.
이 대결 구도에서 수령들이 패하는 첫째 이유는 아전들은 토착세력으로 그 지방 실정에 ‘빠삭한’ 반면, 수령은 기껏 3년 정도 머물다가 떠나는 여행객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수령으로 임관되는 자들이 실무에 어두운 서생이라는 점이다. '목민심서'는 곧 실무에 어두운 서생들을 위한 지방 행정 가이드북이요 실무 처리 매뉴얼이다. 그 필요성을 두고 그는 “수령이라는 직분은 관장하지 않는 바가 없으니, 여러 조목들에 대한 가이드가 있어도 제대로 일을 처리하지 못할까 두려운데, 하물며 수령들 스스로가 생각해서 잘 행할 수 있다고 방기해서야 되겠는가.”(서문)라고 지적한다.
이런 지적 속에는 또 행정이 전문 영역이라는 가치판단도 들어 있다. 말하자면 ‘덕성을 쌓으면’(修己) 곧 ‘정치는 자연스레 이뤄진다’(治人)는 전래의 도덕주의를 넘어 수령의 직무가 ‘고유한 특수 영역’이라는 전문성에 대한 인식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비록 학문이 깊고 넓다 하더라도 아전을 단속할 줄 모르는 자는 백성의 수령이 될 수 없다”(吏典)고 못 박는다.
그런데 왜 ‘목민심서’인가. 우선 목(牧)은 목축이라는 말에서 보듯 ‘짐승을 기른다’는 말인데. 목민은 ‘백성을 기르는 자’ 즉 수령과 관리를 뜻한다. 목동이 가축을 맹수로부터 막고, 풀밭을 찾아 옮겨가면서 기르듯 목민관도 백성을 외부의 침탈로부터 막고 농사를 잘 지어 편하게 살도록 돕는 공인이다. 아! 참 아름답고 가상한 직업이다. 그야말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편 23편)던 그 ‘목자’가 이 목민과 다름없지 않겠는가!
그러나 목민관도 ‘사랑을 자발적으로 자아낼 수는 없다’고 그는 본다. 현실주의적 인간관이라고 할까? 백성을 길러야 할 목민관이 막상 백성을 수탈하는 맹수로 표변할 수 있음에 그는 주의한다. 그러니 수령의 실적에 대한 상부의 엄정하고 조밀한 감찰(고가제도)은 꼭 필요하다. ‘감시하지 않으면 부정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나약한 존재가 인간’이라는 비판적 인간관이 그의 특징이다. 특히 공인은 더욱 그러하다. 그래서 방대한 '목민심서' 가운데 특별히 눈여겨볼 대목은 ‘이전(吏典)’편의 ‘고과제도’가 그 첫째다.
하면, 목민의 민(民)이란 무엇인가. 수령이 아끼고 길러야 할 대상이요, 나라의 재화를 생산하는 기층이다. 수령이 봉록을 먹는 까닭이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한데 당시의 문제는 백성들이 수탈 대상으로 전락하였다는 점이다. '목민심서'의 저술 목적이 바로 ‘백성의 보호와 육성’에 있다면, 이 책의 사활은 백성을 바라보는 저자의 눈길에 달려 있다.
백성들의 실정을 몸소 겪다
어디서 들으니 ‘이해한다’는 말의 영어식 표현인 언더스탠드(understand)가 글자 그대로 ‘낮은 자리에서 보는 것’이라고 하였다. 정작 이것은 다산의 저술 자세를 잘 드러낸 말이다. 서문에서부터 “내 처지가(귀양을 가 있어) 낮았기 때문에 백성들의 실정을 듣는 것이 매우 상세하여 이것들을 종류별로 기록하였다”고 천명했던 것도 바로 ‘이해=낮은 자리에 서 보는 것’이라는 항등식에 꼭 들어맞는다.
백성들의 실정을 몸소 겪었다는 점, 이것이야말로 다른 목민서(지방 행정 매뉴얼)와 다산의 것을 구별 짓는 가장 큰 특징이다. 특별히 곤궁한 노인들과 재난의 첫 희생자들인 아이들, 그리고 핍박받는 여성들에 대한 안타까운 서술은 독자로 하여금 눈시울을 붉히게 만든다. 이에 '목민심서'가운데 눈여겨볼 두 번째 대목은 사회복지 대책을 서술한 ‘진황(賑荒)편이다.
특별히 백성의 눈높이로 묘사한 당시 조세제도의 문란과 관리들의 가열한 수탈 양상, 그리고 빈민들의 삶에 대한 절절하고 사무치는 서술은 2백년 후 독자의 주먹조차 불끈 움켜쥐게 한다. 특별히 ‘애절양(哀絶陽)’이라. 군포의 징수가 얼마나 가혹했던지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군적에 올려 세금을 추달하는 데 대한 저항으로 제 성기를 잘라버린 젊은 사내의 절망과 그것을 들고 관청으로 항의에 나선 아내의 분노, 그러나 열리지 않고 꽉 닫힌 관하의 대문을 그린 시는 읽을 적마다 분을 참지 못하게 만든다. 작가 이병주가 '목민심서'를 두고 ‘분노의 서’라고 짚었던 것도 바로 이 대목에서다.
하여, '목민심서' 가운데 눈여겨볼 세 번째 대목은 ‘호전(戶典)’의 ‘환곡 장부’(帳簿) 조목과 ‘병전’(兵典)의 ‘병역 의무자 선정 ’부분이다. 그러면 또 왜 심서(心書)인가. 지방관들이 ‘명심해야 할 책’이어서 심서인가? 다산은 서문이 끝자락에 다음과 같이 써놓았다. “목민할 마음은 있으나 몸소 실행할 수 없기 때문에 ‘심서’라 이름 한 것이다.” 이 말 속에는 그의 목울음이 가득 들어 있다. 한 국가를 경륜한 뜻과 넉넉한 방략이 가슴에 가득 차 있으나 수족이 묶여 뜻을 실천할 수 없는 선비의 ‘목민서’란, 마치 궁형을 당하여 불구가 된 몸으로 불후의 '사기'를 저술한 사마천의 그 비감과 절통에 직통하는 것이리라.
절망 속에서 핀 한 떨기 꽃
'목민심서' 속에는 분노와 설움이 들어 있다. 그러나 분노와 설움에 휘감기지 않고 절망 속에서 다시금 몸을 일으켜 희망의 이삭을 줍는 것이 또 이 책이다. 그러니 다산은 천상 유자(儒者)다. 저기 공자로부터 “안 될 줄 알면서도 뚜벅뚜벅 걸어가는 길”, 그 오연한 ‘비판적 사회참여’야말로 유자의 특점이 아니었던가. 이렇게 목민심서란 절망 속에서 피워 낸 한 떨기 꽃이다.
어마지두에 자치단체장이 되어, 뭔가 잘해보고는 싶은데 일의 선후를 헤아릴 수가 없고 또 아래 관료들에게 휘둘릴 것이 두려운 단체장들이 혹 있다면 새벽마다 '목민심서'를 읽기를 권한다. 머지않아 행정의 대체와 의의를 헤아릴 수 있으리라. 저기 베트남의 국부, 호치민 선생도 이 책에 심취하였다고 하였으니 속이지 않을 것이다.
배병삼 / 영산대 교수
‘고전의 향연’(한겨레 출판)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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