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물의 논리와 선물의 논리
선물이 존재하려면, 어떤 상호관계, 반환, 교환, 대응 선물, 부채의식도 존재해서는 안 된다. 만약 타인이 내가 그에게 주었던 것을 내게 다시 돌려주거나 나에게 고마움을 느끼거나, 또 반드시 돌려주어야한다면, 나와 타인 사이에는 어떤 선물도 존재할 수 없는 법이다. 이런 반환이 직접적으로 이루어지든 아니면 상당히 긴 유예 조건들을 계산하여 이루어지든 간에 관계없이 말이다. 특이 타인이 내게 동일한 것을 직접 되돌려주는 경우에 이 점은 훨씬 더 분명해진다.
- 데리다(프랑스 철학자)의 ‘주어진 시간’중 -
데리다는 선물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어떤 상호관계, 반환, 교환, 대응 선물, 부채 의식도 있어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 합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이것은 선물이 결코 교환관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보통 어떤 대가를 바라고 주는 물건이라면 그것을 선물이라고 부르지 않으니까요. 오히려 그런 것들은 뇌물이라고 말해야 되겠지요. ‘반드시 돌려주어야 한다면’ 그것 역시 선물일 수 없습니다.
친한 친구의 생일날이 찾아왔습니다. 나는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 30만원을 전부 들여서 아주 근사하고 고급스러운 정장을 한 벌 샀습니다. 친구가 이 옷을 입고 있는 모습을 상상만 해도 너무 행복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런 선물을 할 수 있는 친구가 나에게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했습니다. 생일날 친구에게 나는 이렇게 말하면서 선물을 건넵니다. “절대로 부담 갖지 마. 이건 내가 주는 선물이니까.”
이제 시간이 흘러서 어느덧 내 생일날이 가까워졌습니다. 물론 그 친구도 내 생일날이 언제인지를 잘 알고 있지요. 그런데 생일날 나를 찾아온 그 반가운 친구는 달랑 장미꽃 한 송이를 나에게 건넵니다. 그리고 이 장미꽃에 자신의 마음을 담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 대목이 매우 중요합니다. 여러분은 이 순간 여러분이 친구에게 주었던 30만 원 상당의 정장을 떠올리지 않을까요? 만약 이전에 여러분이 주었던 선물을 전혀 떠올리지 않는 채 아주 행복하게 친구가 준 장미꽃을 받아드린다면, 여러분은 진정한 선물을 건네준 경험을 한겁니다.
그러나 만약 여러분이 이전에 친구에게 주었던 선물을 떠올린다면, 그리고 그때의 정장과 지금 받은 장미꽃을 어쩔 수 없이 비교하게 된다면, 슬프게도 여러분은 결코 선물이란 것을 건넨 적이 없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30만원을 들인 정장으로 여러분은 어떤 대가를 무의식적으로 바랐던 셈이고, 지금에 와서 비로소 그것이 의식화된 것이니까요. 선물에 대한 데리다의 논의가 결정적인 이유는, 선물과 관련된 우리의 허위의식을 그가 뿌리에서부터 흔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그는 우리가 선물로 주었다고 생각한 대부분의 것들이 사실 뇌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비꼬고 있으니까요.
친구가 영화를 보여주면 , 나중에 우리도 그에게 영화를 보여줍니다. 친구가 밥을 사면, 나중에 우리도 그에게 밥을 삽니다. “지난번에는 네가 돈을 냈으니, 오늘은 내가 낼께.”
왜 선물이라고 생각하는 우리의 의식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무의식적인 삶은 뇌물, 즉 교환관계에 빠져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우리가 고독을 잊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말은 우리가 타자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사랑해야만 참된 고독이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역으로 말해서 우리가 교환관계에 빠져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진정한 타자가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미 그는 나와 삶의 규칙을 공유하고 있는 사람, 레비나스(프랑스 철학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나와 더불어 공동의 존재에 참여하고 있는 다른 자아”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실 나와 타자와의 관계란 마치 피조물과 절대적 신과의 관계와도 유사한 것입니다. 나는 그가 무엇을 원하고 또 무엇을 생각하는지 모릅니다. 이런 고독 속에서 나는 두려움과 기대에 점철된 마음으로 나의 정성이 담긴 선물을 보냅니다. 물론 그가 이것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다는 것 역시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상대의 선택이니까요.
만약 그가 나의 선물을 받아준다면, 그것은 내게 하나의 기적이자 축복으로 다가오는 사건이 됩니다. 이 경우 우리는 어떤 “상호관계, 반환, 교환, 대응 선물, 부채의식”도 기대하지 않습니다. 그저 그가 나의 선물을 받아주었다는 사실만으로 행복하기 때문이지요.
강신주 / ‘철학, 삶을 만나다’중에서
빈 마음으로.
물질의 선물도,
타자에 대한 사랑도
빈 마음으로
해야 한다는 글인 것 같습니다.
'인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열 개의 방에서 잠자기 (0) | 2007.03.06 |
---|---|
날마다 새로움으로 가득한 삶을 위하여 (0) | 2007.02.13 |
마음의 길 (0) | 2007.01.28 |
희망이라는 작은 씨앗 (0) | 2007.01.16 |
태초에 관계가 있었다 (0) | 2006.11.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