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작전통제권에 대한 반성적 회고
지난 12·3 계엄 사태 이전의 1년은 한반도에서 전면전이 발생할 수도 있는 아주 위험한 상황이었다. 2023년 11월에 합동참모본부는 북한이 백령도, 연평도 등지의 서북 도서에 도발을 해 올 경우 해주에 있는 북한군 4군단 사령부와 예하 부대 지휘소와 지원시설을 폭격하는 ‘합동타격 계획’을 수립하였다. 합참은 대통령실 지시 때문에 이 계획을 수립하였지만 합참의 실무자조차 이 계획은 “너무 위험하다”며 실행에 반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합참은 이 계획에 이어 북한의 전방 4개 군단(1, 5, 2, 1)까지도 타격할 추가계획도 수립했다. 그해 10월 부임한 신원식 국방부 장관이 북한 도발에 즉·강·끝(즉시 강하게 끝까지) 응징을 외치는 상황이었고 남북한이 체결한 9·19 군사합의서의 일부 조항이 무력화된 마당에 군사 행동에는 어떤 족쇄가 풀린 것 같은 분위기였다. 언제든 북한 전방 전력을 초토화할 수 있는 이런 위험한 계획을 접한 장교들은 “사실상 전면전 아니냐”며 몹시 경계하는 반응이었다. 이 계획이 수립되기 한 달 전인 10월15일에 신원식 국방부 장관은 방송에 나와 “북한이 자살을 결심하지 않을 거 같으면 전쟁은 일으키지 못한다”고 발언하였고 대통령실 역시 국군의날에 신형 현무 미사일의 실물을 공개하며 북한 폭격을 노골적으로 시사했다. 어차피 북한은 대응을 못할 것이라며 금방 잡아먹을 기세였다.
그러나 이런 계획에는 미군이 알아채고 간섭하기 이전에 빠르게 끝내버려야 한다는 단서가 있었다. 남북한의 고강도 교전으로 비상사태가 선포되면 전쟁 준비상태, 즉 데프콘(DEFCON)이 4단계에서 3단계로 격상된다. 데프콘Ⅲ에서 한미연합군에 대한 작전통제권이 미군 장성인 한미연합사령부로 전환된다. 이 경우 우리 합참의장이 후방의 2작전사령부를 제외하고 지휘할 수 있는 전방의 전투부대는 거의 없다. 즉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면 미군의 작전통제권 행사로 인해 전방 전투부대를 대규모로 계엄군으로 투입할 수 없게 된다. 바로 이 점이 북한과 일전을 불사하는 강력한 군사적 대응을 위한 사전 조치로 계엄을 선포하더라도 국내 정치에 군을 투입하기 어려운 사정이었다. 2024년 5월부터 북한이 오물 풍선을 남측으로 내려보내고 6월에 9·19 군사합의서가 전면 무력화되자 합참은 즉시 ‘적 오물 풍선 원점 타격 계획’도 수립한다. 그러나 어디까지가 원점인지, 미군의 개입 이전에 타격이 가능한지 문제가 다시금 제기되면서 이마저도 실행하기 어려운 사정이 발생한다. 계엄 선포 직전인 11월에 합참은 전방 부대에 대공 무기체계인 비호를 동원하여 오물 풍선에 대한 경고사격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10월에 백령도와 연평도에서는 우리 군이 K-9 자주포와 다연장 로켓 천무를 동원한 대규모 해상 사격이 이루어졌다.
정전협정과 유엔사 정전 시 교전규칙을 위반하지 않는 선에서 북한에 대한 군사적 조치를 모색하다 보면 국방부가 계엄을 선포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지난해에 미국 정부가 한국의 계엄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민주주의 회복을 촉구한 배경에는 한반도 안보에 대한 동맹국으로서의 책임감이 있다. 여기서 한 가지 당혹스러운 질문이 등장한다. 과거에 진보 정부가 전시작전통제권의 완전한 환수를 추진하려 했던 국방 과업이 성공했더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합참이 미군의 눈치를 보지 않고 국방부 장관의 대북 강경 대응 지시를 그대로 이행하지 않았을까? 사실 진보 정부가 전작권 전환을 추진한 것은 1994년에 미국이 한국의 동의도 없이 북한 영변의 핵시설을 정밀타격하려는 일방적 움직임을 보인 데서 기인한 바가 크다. 그 당시 충격이 우리 스스로 운명을 결정하고자 하는 절박한 요구로 이어져 노무현 정부의 소위 ‘자주국방 추진계획’으로 표출되었다. 그러나 이번 사태와 같이 한국의 충동적이고 도발적인 정부를 진정시키는 데 미국의 역할이 크다면 전작권을 전환하지 못한 것은 천운이 아니었을까. 미국을 배제하고 작전통제권을 독자적으로 행사하는 이스라엘의 네타냐후 정부가 제 멋대로 확전을 하는 것을 보면 더더욱 그렇다. 권력자가 마음대로 군을 줄 세우는 체제를 혁신하여 군에 대한 시민의 통제(civil control)를 확립하기 이전에 전작권을 한국군으로 완전히 전환하는 것은 위험해 보인다. 윤석열 정부의 지독한 숭미 사상이 북풍을 조장하여 계엄을 선포하려던 기도를 무너뜨린 원인이다. 한국 정부보다 미국 정부를 더 믿어야 한다는 게 서글프지만 말이다.
김종대 / 전 정의당 의원
(2025.1.17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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