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의 법칙
‘천재는 1%의 재능과 99%의 땀으로 완성된다’는 토머스 에디슨의 명언은 틀렸다. 성공은 주어진 조건보다 노력에 의해 좌우된다는 뜻으로 한 말이겠지만 요즘처럼 경쟁이 치열하고 변수가 복잡한 사회에서 1%는 너무 큰 단위이기 때문이다. 100 대 1 경쟁은 놀랄 정도도 아니고, 1% 오차나 확률은 매우 큰 축에 속하는 것이 요즘 세상이다.
도형의 황금비처럼 확률적으로 마법의 숫자와 같은 것을 찾는다면 0.03%가 아닐까 싶다. 불가능한 듯하면서도 현실에서는 흔히 발견할 수 있고, 그래서 나도 노력하면 이룰 수 있다고 꿈꾸거나 내게도 언젠가 닥칠지 모른다고 불안해하는 확률의 경계치처럼 보여서다. 남녀가 이상형의 이성을 만날 확률, 한국 사람이 평생 동안 철도사고로 사망할 확률, 낙하하는 인공위성에 맞을 확률, 성관계로 에이즈에 걸릴 확률, 한국 중소기업이 10년 안에 중견기업이 될 확률, 야생 진드기에 물렸을 때 치사율 등. 선물 투자자가 3년간 계좌를 유지하는 비율도 0.03%이고, 제로 금리국이라고 하는 일본의 정기예금 연이율도 0.03%라고 한다.
자연계에서도 0.03%는 심오한 숫자다. 우주의 대부분은 수소와 헬륨으로 이루어져 있고 우리 몸과 물질을 구성하는 무거운 원소는 0.03%에 불과하다. 지구는 ‘물의 행성’이라고 부를 정도로 물이 풍부하지만 실제로 우리가 이용할 수 있는 담수는 전체 수권 가운데 0.03%뿐이라고 한다. 지구온난화의 주범이면서 생명현상에 필수적인 이산화탄소의 대기중 농도도 0.03%가 표준이다. 수학적으로는 희귀하지만 실제로는 풍부한 것처럼 착시를 일으키는 확률치인 셈이다.
한국 주요 대기업에 평사원으로 입사해 사장에 오르는 데도 ‘0.03%의 법칙’이 적용되는 것을 본다. 어제 기업 경영평가 업체 CEO스코어가 조사해 발표한 내용을 보면 30대 그룹 195개사 직원 90만7000여명 가운데 사장 이상 고위직 임원은 322명이다. 백분율로는 0.036%이고, 경쟁률로 따지면 2817 대 1이다. 그것도 지역적으로 영남 출신(42%)과 학력별로 이른바 ‘스카이대’(61%), 성별로는 남성(100%)에 편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무덤의 에디슨이 요즘 대한민국 젊은이를 위해 특별히 어록을 다음과 같이 수정해야 할 것 같다. “천재는 0.03%의 재능과 99.97%의 땀으로 완성된다”고 말이다.
신동호 / 논설위원
(2013.8.15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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