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칼럼, 정의

혁명하기 좋은 때

송담(松潭) 2025. 5. 21. 06:06

혁명하기 좋은 때

 

 

6·3 대통령 선거로 새 정부가 들어서면 나라에 어떤 변화가 있을까. 모두가 이대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민심이 흉흉하다. 들여다볼수록 심각한 문제들이 도사리고 있다. 지구촌에서는 일찍이 소멸된 이데올로기가 오로지 이 땅에서만 춤을 추고 있다. 서민들의 눈물까지 삼켜버리는 불평등이 곳곳에서 아가리를 벌리고 있다. 또한 사회 전반에 ‘차별’이라는 폭력이 활개를 치고 있다. 이런 음습한 토양에서 생겨나 급속하게 번진 진영 논리가 국민들을 편싸움에 내몰고 있다.

 

지난 3년 동안 정치 자체가 실종됐다. 술과 주술에 취한 권력은 몇번이나 제 살을 물어뜯었다. 그때마다 대한민국은 휘청거렸고, 용산에 모인 무리는 끝내 엽기적인 친위 군사쿠데타를 일으켰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불의에 저항하는 젊은이들이 있었다. 분연히 일어나 불법, 위선, 거짓에 맞섰다. 눈보라가 몰아치는 거리에서 은박지를 온몸에 감고 밤을 새웠다. 국민들은 키세스 시위대에 눈시울을 붉혔다. 어떤 포효보다 우렁차게 대한민국을 깨웠다. 그들은 미래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전국에서 트랙터를 몰고 상경한 농민 시위대를 경찰이 가로막자 남태령 고개로 달려갔다. 밤샘 농성 끝에 시위대의 길을 열었다. ‘남태령 대첩’이었다. 미래 주인공들이 미래로 가는 길을 열었다. 국민들은 내란을 평정하면서 우리 시대 젊은이들을 재발견했다.

 

청년들은 혁명적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기존의 틀과 질서로는 자신들의 꿈과 이상을 펼칠 수 없음을 절감하고 있다. 20세기에서 일어난 혁명들도 우연처럼 보이지만 필연이었다. 사회가 곪을 대로 곪으면 누군가 일어나 혁명의 방아쇠를 당겼다. 그 주체는 늘 젊은이들이었다. 이 땅의 청년들도 사회의 병폐를 꿰뚫어보고 있다. 그리고 이번 내란을 물리치면서 연대의 힘을 확인했다. 자신들이 뭉치면 사회를 변혁시킬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한국에는 상륙하지 않았(못했)지만 프랑스에서 1968년에 발발한 68혁명을 돌아보면 혁명은 결코 우발적인 것이 아니었다. 청년들은 소수 엘리트의 우월감과 전횡에 절망했고, 그들을 비호하는 권위적이고 위선적인 권력에 낙담했다.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다. 68혁명은 세계 질서를 뒤흔들었다. 연대하여 싸우면 좀 더 나은 사회가 도래한다는 믿음을 심어주었다. 청년들은 소외된 계층과 약자들을 보듬고 좀 더 인간답게 살기 위해 행동에 나섰다. 인류에 그런 유산을 남긴 68혁명은 “금지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명언과 함께 지금도 진행형이다.

 

“68혁명은 인간다운 삶이 무엇인지를 묵직하게 묻는 시대의 물음이었다. 자본주의 생산체제와 분배구조, 그리고 그에 따른 물신숭배, 인간소외 등에 대한 저항과 비판이었다. 이런 문제들은 전후 세계 거의 전부가 겪고 있던 문제였기에 연소성과 전염성이 매우 강했다.”(김경집 <진격의 10년, 1960년대>)

 

민주당은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여 ‘빛의 혁명’을 이루겠다고 한다. 시대의 어둠을 사르는 빛의 혁명은 성공할 수 있는가. 8년 전, 겨울 광장을 촛불로 밝혔던 촛불혁명이 떠오른다. 광장의 사람들은 촛불로 세운 정부가 자신을 태워 세상을 밝히는 촛불이 될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저들은 사방에서 어둠이 몰려와도 촛불을 켜지 않았다. 촛불의 감동이 사라진 촛불정권, 이제는 누구라도 촛불혁명을 입에 올릴 수 없게 되었다.

 

막상 정권을 잡고 보니 혁명이라는 말이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혁명은 새로운 질서를 창출해야 하였기에 자신이 없었을 것이다. 때로는 자신들이 움켜쥔 권력의 일부를 내놓아야 했기에 싫었을 것이다. 그래서 적당히 시늉만 내다가 나중에는 포기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렇게 촛불은 사위었고, 혁명도 쪼그라들었다. 혁명이란 민중이 부수고 없앤 그 자리에 새것을 세워야 한다. 그러나 못난 정치는 새것을 장만하지 못했다. 그렇게 기회를 놓쳤다.

 

내란 비호 세력은 이번 선거에서 철퇴를 맞을 것이다. 이를 계기로 모든 특권과 악습을 철폐한다면 재조산하(再造山河)의 기회가 될 수 있다. 청년들이 호응해줄 것이다. 지금 청년들은 기성세대가 버린 온갖 부유물들을 치워야 하고, 그러면서도 그들을 부양해야 한다. 이제는 누추하고 더러운, 야비하고 음흉한 과거를 청산해야 한다. 이미 임계점을 넘었는지도 모른다. ‘인간’을 찾는 혁명, 생각만 해도 설렌다. 우리는 우리를 믿어야 한다. 여러모로 혁명하기 좋은 때이다.

 

 

 

김택근 / 시인

(2025.5.21 경향신문)

 

 

< 2 >

 

총구에 스며든 민주주의 “죄송합니다”

 

 

나라가 대체로 평온하다. 대통령이 내란을 일으키고 나라가 쪼개질 듯이 패를 나눠 싸웠지만 을사년 봄은 그런대로 화사하다. 과거에는 지배자의 흉기였던 헌법도 민주주의 성곽으로 튼실하다. 초헌법적인 왕을 꿈꾸던 자는 거꾸러졌다. 세계의 시선도 달라졌다. 도널드 트럼프의 폭주에 항의하며 거리로 쏟아져 나온 미국 시민들도 한국이 부럽다고 했다. 우리에게는 분명 특별함이 있다. 그 특별함에 들어있는 피와 눈물 또한 특별하다.

 

대한민국은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국민들이 민주주의를 쟁취했다. 이른바 자생적 민주주의 국가이다. “중국은 아직 ‘못하고’ 있고, 인도는 영국에게 ‘배워서’ 하고, 일본은 패전 후 맥아더 장군이 ‘시켜서’ 하고 있다.”(김대중) 세계가 한국은 민주화와 산업화를 단시일에 이뤄낸 나라라고 상찬한다. 하지만 단시일에 가난을 물리치고 독재정권을 무너뜨림은 엄청난 일이었다. ‘역사적인 일’들이 끊이지 않았고 희생이 뒤따랐다. 우리 현대사의 압축 성장에는 민초들의 피눈물이 스며 있다. 천신만고 끝에 민주화를 성취했다. 의롭게 싸운 사람들은 세상을 떠나고 그들이 일궈낸 민주주의를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다. 민주화를 이룩했기 때문에 독재자의 딸 박근혜가 대통령이 될 수 있었고, 검찰 출신 윤석열이 느닷없이 대권을 잡을 수 있었다.

 

윤석열이 지난 21일 내란수괴 혐의로 법정에 섰다. 내란이 일어난 그날, 국회로 난입했던 계엄군 지휘관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12월3일 어느 한 곳에서라도 총성이 울렸다면 대한민국은 치명상을 입었을 것이다. 다행히 병사들은 계엄 시늉만 내다가 철수했다.

 

지휘관들의 증언은 한결같이 명료했다. 조성현 수도방위사령부 제1경비단장은 부당한 명령을 거부한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군에게 명령은 목숨을 바쳐 지켜야 할 중요한 가치지만 (그 명령은) 반드시 정당하고 합법적이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다.” 설명이 아니라 경구였다. (공권력을 사적 용도로 휘두른 윤석열은 법정에서 시종 졸고 있었다고 한다.) 그날의 병사들은 군부독재에 부역했던 과거의 군인이 아니었다. 궁지에 몰린 윤석열 측은 조 단장을 향해 회유를 시도했다. “원래 기억은 점점 희미해지는 것 아닌가.” 이에 조 단장은 단호하게 말했다. “특정한 기억은 점점 더 도드라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계엄령을 받들고 총기를 잡던 비장한 순간을 어찌 잊을 것인가. 그는 부하들을 향해 시민들에게 저항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그날 밤 병사들의 총구에, 방아쇠에 민주주의가 들어있었다. 국회에 투입된 병력이 철수할 때 어느 병사가 말했다. “죄송합니다.”

 

김형기 특수전사령부 특전대대장은 윤석열을 강골 검사로 각인시키며 일약 스타로 만든 유명한 말을 면전에서 돌려주었다. “저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 또 모든 잘못을 부하들에게 떠넘긴 내란의 수괴 앞에서 자신이 책임을 지겠다고 밝혔다. 부하들은 아무것도 안 했고 그 덕분에 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었다고 단언했다. 윤석열을 향한 포효였다. 그럼에도 김 대대장은 마지막 진술의 마지막에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어느덧 제 나이가 마흔셋, 군 생활 23년 차가 되었다. 23년의 군 생활 동안 과거나 지금이나 바뀌지 않는 게 한 가지가 있다. 국가와 국민을 지키는 것이다. 전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 조직에 충성해왔고, 그 조직은 제게 국가와 국민을 지키라는 임무를 부여했다.(…) 차라리 저를 항명죄로 처벌해달라. 그러면 제 부하들은 항명도, 내란도 아니게 될 것이다. 제 부하들은 아무 잘못도 없다. 그날 그 자리에서 그들이 아무 일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그 덕분에 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었다. 끝으로 우리 군이 다시는 정치적인 수단으로 이용되지 않게끔 제 뒤에 앉아 계신 분들께서 철저하게, 날카롭게 혹은 질책과 비난을 통해서 우리 군을 감시해달라. 그래야만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죄송하다.”

 

민주주의를 지킨 의로운 군인들이 국민들에게 용서를 빌고 있다. 김 대대장은 통수권자의 잘못까지 대신 빌고 있다. 우리에게는 어리석은 대통령이 있었지만 다행히도 광란의 칼춤을 막아낸 현명한 군인들이 있었다. 김 대대장 말대로 군대 뒤에는 국민과 언론이 있다. 군이 정치 수단으로 악용되지 않게 살펴야 할 것이다. 법정 소식이 정의롭고 따뜻해서 봄이 ‘제대로’ 왔음을 실감한다. 은연중에 군을 무조건 명령에만 복종하는 무지성의 집단으로 바라보지는 않았는지 돌아본다. 미안합니다!

 

 

김택근 / 시인

(2025.4.23 경향신문)

 

 

< 3 >

 

악마의 정치

 

(...생략...)

 

악마라는 개념은 히브리어의 ‘사탄’, 이를 그리스어로 옮긴 ‘디아볼로스’에 뿌리를 둔다. 이 개념은 원래 신의 질서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제기하고 검증하고 비판하는 기능을 지녔고, 또 인격화된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초기 기독교는 이를 ‘타락한 천사’로서 신에 반항하고 사람을 죄와 타락으로 유인하고 신이 창조한 질서를 파괴하는 인격체처럼 이해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악마의 이해 방식은 중세에 있었던 마녀사냥이나 이단자 화형이라는 극단적인 행태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동아시아 문화권에서는 이처럼 절대 악의 인격체인 악마, 그리고 이와 싸우는 천사 사이의 적대적인 대립 관계가 아니라, 가령 음과 양의 상호보완적인 관계로서 우주적인 질서를 파악했다. 음은 결코 사악하거나 부정적인 것이 아니다. 음과 양은 지옥과 천당이나 악마와 천사의 관계가 아니라 밤과 낮, 겨울과 여름, 여성과 남성처럼 서로 보완 관계에 있다고 보았다.

 

또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귀신·악귀·요괴와 같은 개념도 기독교적인 전통 속에서 이해하는, 인간을 타락의 세계로 유혹하고 파괴하는 절대 악으로서의 악마와 다르다. 굿에서 보이는 것처럼 이들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 머물고 있기 때문에 이들과 소통도 가능한 존재로서 여긴다.

 

기독교 악마의 개념과 비교적 가까운 마라(魔羅)라는 개념이 불교에 있다. 부처님의 진리가 세상에 퍼지는 것을 훼방하는 존재이자 중생을 감각적 쾌락과 죄악에 빠지도록 유혹하는 존재다. 그러나 사탄처럼 인간 세계의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만(我慢)처럼 인간의 내면세계에 존재한다.

 

서양과 동양에서 보이는 악마 또는 이와 비슷한 존재에 대한 이해에서 나타나는 이런 차이에도 한국 사회에서 나타나는 극단적인 대결의 전제이자 동시에 이의 결과물인 악마에 대한 생각이나 신념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가끔 생각해 보게 된다.

 

이와 관련해 먼저 기독교 근본주의를 떠올리게 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오로지 선과 악 사이의 불가피한 투쟁의 현장으로 보는 미국발 근본주의가 한국에 상륙한 이래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라는 팻말을 들고 거리를 헤매는 전도사들도, 또 세계 최대의 복음교회를 이끄는 목사들도 꾸준히 악마들을 지목해 왔다. 공산주의자나 사회주의자는 물론 동성애자, 성소수자, 여성주의자, 불교 신자, 무신론자 등 여러 이름을 가진 악마였다.

 

그래서 <성경>의 말씀이 바로 우리의 모든 정치 생활의 지침이라는 근본주의적인 확신에서 성조기와 태극기를 함께 든 ‘아스팔트 보수’는 거리에 나서서, 파면된 윤석열이 핍박받고 있는 예수라고까지 주장한다. 이러한 현상을 종교사회학적인 시각에서 분석해보면 이의 본질은 간단하다. 한국전쟁의 경험과 이에 따른 강력한 반공주의, 개발독재를 통한 경제 성장이 낳은 사회적 갈등의 심화, 그리고 전통적인 믿음의 체계와의 경쟁은 한국의 근본주의적 개신교를 어느 나라보다 전투적으로 만들었다. 이제는 한국은 물론 전 세계에 복음을 전하는 역사적 사명을 띠었다고까지 자부하기도 한다.

 

악마를 척결한다는 ‘12·3 담화문’

 

헌재 앞에서 ‘국민의힘 기독인회’가 주최한 탄핵 반대 집회에서, 이미 승려직을 박탈당한 한 승려는 “빨갱이는 죽여도 돼”라는 구호와 함께 태극기와 성조기가 그려진 방패를 들고 서 있었다. 기독교 근본주의의 반공주의가 그 외연을 이제 불교까지 확대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는 임제(臨濟) 선사의 유명한 법문 ‘부처님을 만나면 부처님을 죽이라’(逢佛殺佛)를 빨갱이를 만나면 죽여도 된다는 식으로 제멋대로 읽었다.

 

이런 증오의 언어는 우리 역사에서는 결코 말로 끝나지 않았다. 남북 분단 이후, 특히 한국전쟁을 거치고 독재정권의 치하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빨갱이라는 이름으로 죽임을 당했는가.

 

여기서 나는 이탈리아 철학자 조르조 아감벤(1942~)의 ‘호모 사케르’(Homo Sacer)라는 개념을 떠올린다. 원래 ‘신성한 사람’이라는 뜻도 있지만 ‘추방된 사람’이라는 이중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고대 로마에서 범죄 때문에 공민권이 박탈당해 누구든지 이 인간을 살해해도 죄가 되지 않고 제물로서도 바칠 수 없는 존재를 의미했다. 법적으로, 정치적으로 그리고 종교적으로도 완전히 배제된, 단지 생물학적 의미의 인간이었다.

 

우리의 현대사에서 빨갱이는 이런 의미에서 호모 사케르였다. 악마와 같은 존재이기에 죽여도 범죄 행위가 되지 않는다는 ‘유죄불벌’(有罪不罰)이 통하는 세상이었다. 문제는 21세기에 들어선 오늘날에도 한국 사회에서 빨갱이는 죽여도 된다고 공공연하게 떠들 수 있는 현실이다.

 

이는 아주 제한적인 현상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를 방증하는 엄청난 사태를 최근 경험했다.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는 윤석열의 비상계엄 담화문은 악마와 같은 존재를 국가가 합법적인 테두리 안에서가 아니라, 예외적인 상태를 선언하고 이를 통해 척결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이 발표를 보면서 “차가운 영혼, 떠벌리는 자, 눈먼 자, 주정뱅이는 내 가슴에 와닿지 않는다. 두려움을 알지만 이를 제어하고, 파멸을 보지만 자존심을 지닌 자가 가슴에 남는다. 파멸을 보지만 독수리의 눈으로, 독수리의 발톱으로 이를 움켜쥐는 자는 용기를 지닌 자다”라고 주장한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악마를 위한 변명을 떠올렸다. 그래서 비정상적인 권력의 독선과 위선을 고발했던, 깨어난 시민은 오는 대선에서 현명한 선택을 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송두율 / 전 독일 뮌스터대 사회학 교수

(2025.4.23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