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을 위한 기도
< 1 >
사랑하는 아들

어느 날 아들의 모습을 바라보니
맑고 똑똑하고 참신하게 보였습니다.
이것이 부모의 눈에 비친 자식의 형상입니다.
누구든 자식은 귀하고 사랑스러울 것입니다.
(2023.10.25)
< 2 >
숲길에서의 기도(祈禱)

뒷산 임도(林道)에 있는 숲길을 자주 걷습니다. 왕복 두 시간 정도 소요되는데 몇 군데서 잠시 멈춰 생각에 잠기거나 마음속으로 기도하는 장소가 있습니다.
먼저 40분쯤 걷다가 높이 솟은 튼튼한 나무에 손바닥을 대고 심호흡을 하면서 기(氣)를 받습니다. 두 팔로 안아도 닿지 않을 나무를 보며 나무가 얼마나 강하고 튼튼한지를 느낍니다. 옛날엔 이런 나무에는 ‘정령(精靈)’이 산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다음은 숲길을 바라보며 기도하는 장소입니다. 약간 구부러진 가벼운 내리막길은 무척이나 평화롭게 보입니다. 우리네 인생이 이처럼 평화로우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합니다. 먼저 아들도 이 길처럼 당면 결혼문제가 잘 풀리고 순탄한 인생길이 열리기를 빕니다. 이 길은 저에게 소원을 빌고 감사를 드리는 십자가와 같은 상징(象徵)의 길입니다. 지금은 숲속에서 기도하지만 아들이 원하는대로 앞으로는 주일에 교회에 나가 기도하는 시간을 갖아야겠습니다. 저에게도 신앙심이 생기는 축복이 있기를 빕니다.
(2023.3.4)
< 3 >

창발(創發, emergence)
국어사전에 창발(創發)이란 ‘남이 모르거나 하지 아니한 것을 처음으로 또는 새롭게 밝혀내거나 이루어 내는 것’을 말하고, 위키백과에서는 ‘하위 계층(구성 요소)에는 없는 특성이나 행동이 상위 계층(전체 구조)에서 자발적으로 돌연히 출현하는 현상’이라고 말합니다.
창발 또는 창발성은 과학과 관련이 깊은 용어인데 양자역학을 전공한 경희대학교 물리학과 김상욱 교수는 다음과 같은 예를 들어 창발의 개념을 쉽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한글 자모가 기본 입자라면 단어는 원자라고 할 수 있다. 'ㅅ' 'ㅏ' 'ㄹ' 'ㅇ'이라는 기본 입자가 모여 '사랑'이라는 원자가 되었지만, 자음 'ㅅ' 'ㄹ' 등으로부터 단어 '사랑'이 갖는 의미를 추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랑'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한글 자모가 모여 각각의 자모에는 존재하지 않던 의미가 새롭게 나타난 즉 창발된 것이다.
- ‘하늘과 바람과 별과 인간’(바다출판사) 중 -
창발은 기본입자, 원자와 분자와 같은 과학의 세계에서 뿐만 아니라 인간관계에서도 일어난다는 생각이 듭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과 남이 결혼하여 부부가 되면 형제자매는 물론 부모보다 더 우선순위가 앞서는 것을 보고 여기에 창발 현상이 일어난 것이라 여깁니다.
그런데 부부관계에서 창발현상이 일어나려면 원래 서로가 완전히 다른 존재라는 전제에서 출발하지만 상대를 깊이 이해하고 배려했을 때 효과가 나타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양쪽이 충돌하여 분해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결혼을 위해 미팅을 준비하고 있는 아들에게 전합니다. 각자 자라난 환경이 다르고 개성이 다른 남녀가 서로의 이상에 맞는 사람을 찾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상형(理想型)이란 보편적 인간의 평범한 기대심리일 뿐, 신기루 같은 것이거나 관념(觀念)으로만 존재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그러니 이상형을 만나기 위해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어떻게 하면 상대를 좋은 인연으로 이끌어갈까에 집중하고 노력하라는 것입니다. 결혼이나 부부관계에 정도(正道)가 따로 없습니다. 자신이 먼저 양보하고 이해하고 아끼고 사랑해 주면 되는 것입니다. 부디 아들에게도 선연(善緣)의 창발이 이루어지길 빕니다.
(2023.6.20)
< 4 >
웨딩 꽃
가끔 ‘희망’이 밀물처럼 밀려올 때가 있습니다. 아들이 결혼하기 위해 미팅을 한다는 소식을 들을 때입니다. 그러다가 상대와 인연이 이어지지 않고 끝나버리면 당초 희망은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크다’는 말을 남기고 썰물처럼 빠져나갑니다. 몇 번의 미팅이 있었는데 아들이 찾는 결혼 대상은 첫째가 기독교인이어야 하고 그중에서도 믿음이 형식적인 경우는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아 여태껏 인연을 찾지 못했습니다.
저는 아들에게 이상형을 찾으려고 애쓰기보다는 만남을 성공적으로 이끄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하지만 아들은 모든 생활의 원칙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삼기 때문에 제가 원하는대로 되지 않습니다. 아들은 자신의 대학 진학과 현재의 직장도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결과라고 하면서 결혼도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실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몇 해 전부터 저희집 정원에 꽃들이 유달리 풍성하게 피는 것을 보면서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집사람은 “우리 집에 계절따라 늘 꽃이 피고, 우리 부부도 항상 ‘웃음꽃’을 피우고 사는데 왜 아들에게는 '웨딩 꽃’이 피지 않을까요.”하면서 함께 웃었습니다.
나무는 땅속에서 추운 겨울을 버티다가 봄이 오면 땅을 뚫고 새싹이 나와 마침내 꽃을 피워냅니다. 올해도 벌써 저물어갑니다. 내년에는 아들이 ‘웨딩 꽃’을 피워내길 바랍니다. 희망은 더디지만 서서히 우리곁으로 오고 있다고 믿습니다.
(2023.12.5)
< 5 >
봄날의 기다림

우리집 정원에는 3월 중순부터 맑고 고운 수선화가 피더니 이달 초부터는 튜립이 아름답게 피어 따뜻한 봄기운이 가득합니다. 대문을 막 들어서면 보이는 꽃밭의 튜립은 꼭 누군가를 환영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2024.4.12)

프롬은
“사랑은 주는 것이지 받는 것이 아니며,
능력의 문제이지 대상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사랑받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받는 것이다.
사랑은 주는 것이므로 주는 능력의 문제가 된다.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나 타인을 사랑하는 것은 모두 주는 능력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사랑의 대상은 이상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주는 사랑의 능력을 발휘하는 과정에서 존재한다.
주창윤 / ‘사랑이란 무엇인가’중에서


새우난이 화려하게 피었습니다.(4.21)

< 6 >
아들을 응원하며...
요즘 젊은 여성들이 비혼을 선택하고 결혼을 하더라도 출산을 기피한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아들이 결혼을 하고 싶어하지만 상당수 여성들이 부모들의 권유나 강요에 의해 미팅에 나오고 ‘혹시 괜찮은 남자면 해 보고....’하는 식이기 때문에 남자들이 결혼하기 매우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요즘 여자들은 나이 많은 것을 조금도 흠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40세가 다 되었으니 마음이 급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착각입니다.
이러한 경향은 핵가족의 시대가 지나고 가족보다는 개인이 우선하는 핵개인(核個人, nuclear individual) 시대의 현상이라고 합니다. 더군다나 여성들의 능력이 남성들과 차이가 없고 오히려 더 우월한 경우도 많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여성학자 정희진은 아이를 키울 수 없는 상황에서 출산하지 않는 것은 생명체의 자기 보존 원리로서 자연스러운 일이며 진화생물학적 적응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의사, 판검사, 고액연봉의 전문직, 대기업 직원, 교사 정도가 아닌 경우는 좀처럼 인연을 맺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희도 맹자의 말처럼 ‘행유부득 반구저기(行有不得 反求諸己)’ 즉 ‘행함에 있어 얻는 것이 없다면 그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아야 한다’는 말을 긍정하게 됩니다.
안타깝습니다. 젊은 여성들은 결혼이 선물해 주는 좋은 점들을 간과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가사일도 여자가 전담하는 시대가 지났고 육아까지 남자들이 적극 나서고 있습니다. 시부모들도 며느리를 함부로 대하지 않고 ‘모셔야 하는’ 시대입니다. 혼자 보다는 서로 기대면 따뜻한 체온이 몸을 더 건강하게 만들어주고, 출산은 고통을 수반하지만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 생명의 신비와 경이로움을 느끼며 때론 자연스럽게 미소 짓고 행복감에 젖습니다. 남편은 ‘챙겨줘야 할 대상’으로 귀찮은 존재가 아니라 나를 지켜주는 버팀목이고 나의 심부름꾼이고 나를 위기에서 보호해 주는 수비대장입니다. 이러한 긍정적인 요소들은 나이가 들수록 더 느끼게 될 것입니다. 현재의 편안함과 안일을 선택한 것이 미래에는 외로움과 고독. 나아가 고통이 될 수 있습니다.
비혼주의나 결혼에 부정적인 젊은 여성들에게 전합니다. 지금 자신이 경제적으로 풍요롭고, 평화롭고 자유롭다면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우선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께 감사하고 신께도 세상에도 감사해야 합니다. 그러면 부모님이 원하는 것에 조금이라도 보답해야 하고 어렵지만 세상을 위해서도 조금이라도 기여하며 사는 것이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도리이고 예의입니다. 무엇보다도 인간이 태어나 누군가를 진심으로 아낌없이 사랑하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결혼은 이처럼 높은 차원의 의미를 갖는다는 것을 생각해 봤으면 합니다. 에리히 프롬은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능력’이라고 했습니다. 결혼하여 주는 능력을 잘 발휘하면 ‘결혼은 무덤이다’는 명제는 거짓입니다.
어느 날 마음이 찹찹하여 아들에게 보낸 시(詩)입니다. 아들을 응원하는 제 마음입니다.
그대의 한쪽 무릎이 주저앉을 때
노을은 한쪽 가슴이 까맣게 타고 있었다
포기하지 마라
재가 된 하늘 위에 사리 같은 별이 뜬다
그 별이 더 많은 별을 불러올 것이다
땀방울에 섞인 눈물 닦고 허리를 펴라
어둠 속에 어둠만 있는 게 아니다
저녁 바람도 초승달도 모두 그대 편이다
- 도종환의 시 ‘노을’중 일부
< 7 >
뜨거운 여름에
연일 폭염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 뜨거운 계절에 아들의 신변에 변동이 생겼습니다. 아들이 자치단체에서 실시하는 경력직 공채 시험에 합격하여 공기업 여수지사 근무를 마치고 늦깎이 공무원이 되었습니다.
지난 8월6일부터 완도군청에서 수습을 하고 9월2일자로 섬지역 면사무소로 발령(지방공업서기보)을 받았습니다. 늦은 나이에 돌고돌아 섬마을 공무원으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선친께서도 처음에 공무원으로 출발하셨고 저는 처음부터 끝까지. 아들은 공기업에서 공무원으로. 이렇게 3대에 걸쳐 공직을 맡게 되었습니다. 아들의 앞길에 계속 좋은 일이 이어지길 바랍니다.
(2024.9.2)

< 8 >
섬마을 선생님
섬에서 근무하고 있는 아들이 오늘 옵니다. 원래는 금요일에 나왔다가 일요일에 들어가는데 이번에는 오늘(토요일) 아침에 첫 배를 타고 나옵니다. 얼마 전 늦깎이로 공무원이 된 아들이 자치단체의 말단 면사무소에서 근무하면서 재난관리 업무 등을 담당하다보니 호우주의보만 내려도 비상근무를 해야 한답니다.
평소 새벽에 일어나 컴퓨터를 켜면 제일 먼저 순천날씨를 검색했는데 이제는 ‘완도 날씨’를 검색합니다. 날씨의 관심사가 아들이 사는 곳으로 바뀌었습니다. 부모는 자나깨나 자식걱정입니다. 아들이 결혼을 했으면 걱정을 좀 덜 할 것 같은데 아직 미혼이어서 저와 집사람의 머리 속에서는 다 큰 아들 걱정으로 차 있습니다. 우리가 늙어서 그런가 봅니다.
잠시 후면 배에 승용차를 싣고 나오면서 다도해의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서 있을 아들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이 근사한 섬마을 선생님(교직은 아니지만...)이 수줍은 섬처녀를 만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옛스러운 상상을 해 봅니다. (2024.9.28)
해당화 피고지는 섬마을에
철새따라 찾아온 총각선생님
열아홉살 섬색시가 순정을 바쳐
사랑한 그 이름은 총각선생님
서울엘랑 가지를 마오 가지를 마오
< 이경재 작사. 박춘석 작곡, 이미자 노래, 1966년 >


< 9 >
나의 아침시간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라’는 말은 어린시절부터 들었던 생활수칙입니다. 이 수칙은 노인이 되니 자동적으로 지켜지고 오히려 너무 일찍 깨어 수면의 질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새벽 5시 전후에 일어나 따뜻한 녹차를 한 잔 마십니다. 아직 동이 트지 않은 새벽은 어둠에 잠겨 고요합니다. 차를 마시며 가벼운 명상에 잠기면 마음이 조금은 설렙니다. 무슨 좋은 일이 있어서가 아니라 맑은 새벽에는 그냥 기분이 좋습니다. 긍정과 감사의 하루가 시작되는 시간입니다.
아침식사 대신 먹는 간단한 과일과 야채를 준비하는 일은 제가 맡고 있습니다. 저보다 늦게 잠드는 집사람이 깨지 않도록 딸가닥 소리를 내지 않습니다. 두 접시 중 집사람이 먹을 접시에 더 싱싱하고 모양이 예쁜 것으로 담습니다. 사소한 것이지만 고생하는 집사람한테 예의를 지키고 싶습니다. 요리까지 해야 더 잘하는 것이겠지만 아직은 그렇지 못 합니다.
매일 노는 백수지만 월요일은 한 주의 시작이어서 새롭고, 금.토요일은 아들을 만나러 완도에 가기 때문에 여행가는 기분이 듭니다. 그곳에 가면 바다를 볼 수 있습니다. 가까운 곳에 명사십리 해수욕장이 있습니다. 아들이 결혼하게 되면 주말여행을 완도로 갈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시부모와 자주 마주치게 되면 며느리가 부담스러울 것이니 우리가 스스로 자제해야 합니다.
아침엔 단톡방 몇 군데에서 ‘카톡 카톡’ 소리가 울립니다. 이미지나 동영상의 기계적인 문구지만 안부를 물어주는 그들이 고마워서 간단하게 답장을 합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정원으로 나가면 마른 잔디 위에 아침햇살이 내려와 있습니다. 여름엔 파란잔디가 시원스럽게 보이지만 겨울엔 누런잔디가 아침햇살을 받고 모락모락 김을 풀어내어 포근해 보입니다. 매일매일이 꼭 신나는 하루가 아니라도 좋습니다. 이제는 아침 햇살을 보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눈부십니다. 움추린 생명들이 기지개를 켜고 새봄이 성큼 오고 있습니다.
(2025. 2월의 마지막 날에)

완도읍
< 10 >
아들의 인생진로에 대하여
먼저,
아들이 늦은 나이까지 결혼하지 않고 있어 애를 태웠습니다. 그런데 결혼 문제는 오직 아들의 책임에 따라 선택해야지 부모가 방향을 제시하고 독려한다고 될 일이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아들의 말대로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따르기로 했습니다.
다음으로,
늦깎이 공무원이 된 아들이 엊그제 책장을 정리하면서 그동안 미련을 두었던 ‘기술사’시험 관련 많은 책들을 버려야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더 이상 미련을 두지 말고 한 우물을 파야한다고 조언하며 잘한 일이라고 했습니다.
아들의 입장을 생각해 보면 공무원이 되었지만 나이가 많고 하위직으로 시작하였기에 근무하는 과정에서 상대적 열등감을 느껴 또 다시 직장을 옮길 생각을 가질 수 있습니다. 또 지금의 섬 지역 지자체에서 벗어나기 위해 국가직(경력직 채용 시)으로 옮길 생각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결혼 문제만은 아들의 선택에 맡기더라도, 직장은 지자체 공무원으로 끝까지 남기를 강력히 권합니다. 제가 부처를 옮겨 스스로 출세의 길을 포기했던 것이 결코 잘한 선택이 아니었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아들아! 옆을 보지 말고 이제는 앞을 보고 달려라! 늦었지만 묵묵히.
(2025.3.4)
< 참고> 마라톤, 그 끝없는 도전의 의미
마라톤을 뛰는 사람들은 42.195㎞라는 길고도 힘든 거리를 달리면서 체력과 정신력을 시험한다. 시작부터 끝까지 계속해서 달려야 하는데, 그 과정 속에서 수많은 유혹과 고통이 우리를 기다린다.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자신과의 싸움을 시작한다. 그때, 진정한 마라톤의 의미가 드러난다. 마라톤은 단지 체력의 한계를 넘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약함을 극복하고 더 나은 자신으로 성장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마라톤에서 중요한 것은 ‘완주’ 자체이다. 이 길고 힘든 여정을 끝까지 버티고 완주한 사람들은 스스로 엄청난 성취감을 얻게 된다. ‘끝까지 해냈다’는 기쁨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보상이며, 마라톤의 진정한 가치인 것이다. 마라톤은 우승자가 아니라, 모든 참가자가 진정한 승자라는 말을 듣게 되는 순간이다. (...생략...)
마라톤의 또 다른 큰 매력은 바로 사람들과의 연결이다. 마라톤을 함께하는 사람들은 경쟁 상대일 수 있지만 서로의 도전을 격려하는 동지이기도 하다. 각기 다른 배경과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같은 목표를 향해 달리며, 그 속에서 나누는 응원과 위로는 평생 기억에 남을 소중한 순간들이 된다. 마라톤은 한 사람의 도전이 아니라, 모두의 도전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더욱 깊어진다. (...생략.)
김원식 / 전 올림픽 마라토너 스포츠 해설가
(2025.3.4 경향신문)
< 11 >
부질없는 자식 걱정
“ 저 집은 자식들 모두 잘 됐고 무슨 걱정거리가 있겠냐?” 이 말은 아무 걱정없어 보이는 사람들에게 한 번쯤 던져보는 말입니다. 그런데 누구든 걱정거리는 한두 가지 안고 사는 것이 인생입니다. 저희도 평온하게 잘 살고 있지만 아들이 결혼하지 못하고(또는 결혼지 않고) 있는 것이 걱정거리입니다. 비교적 낙천적인 저는 그런대로 괜찮지만 소심한 집사람은 걱정이 많습니다.
자식은 죽을 때까지 걱정이라고 하는데 나약한 마음으로 걱정하기보다는 때론 무관심도 필요할 것 같습니다. 부모의 관심은 자식을 온실 안에 가두는 것이고, 의도적이 아니라도 무관심은 자식이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른다는 점에서 득이 됩니다. 야생으로 키우는 것이 답인데도 저희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사랑을 왜곡’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엊그제 토요일 순천과 완도의 중간지점인 장흥에서 아들과 도킹하여 반찬 1주일분을 전해 주고 2분 만에 헤어졌는데 아들의 얼굴을 보니 환하고 좋아 보였습니다. 아들의 모습은 집사람의 걱정과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었습니다. 결혼하면 육아, 요리, 청소 등을 주도적으로 해야 하는 아들을 애기처럼 생각하고 걱정하는 것은 매우 불필요한 행동임을 알아야겠습니다.
직가 이서원은 ‘폭력이란 통제의 다른 이름’이라고 하면서 ‘너는 너고 나는 나로 사는 것이 비폭력이다’라고 언급했는데 이는 부모의 자식에 대한 지나친 간섭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2025.9.22.)
< 침고 > 폭력이란 통제의 다른 이름이다
결혼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어느 부부의 주말, 시댁에 가기로 한 날이었다. 남편이 먼저 현관문을 나서고, 아내도 따라 나가려는 찰나 전화벨이 울렸다. 아내가 받았다. 시어머니였다.
"언제 출발하니?” "지금 나가려고요.” “아, 그래. 너희들 올 때 뭘 타고 오냐?” "지하철로 가려고요." "거긴 바로 지하철역이 없을 텐데, 일단 마을버스를 타겠구나." "아, 네. 어머님.”
"그리고 지하철 계단 오른쪽으로 내려오고. 뛰지 말고...”
그렇게 이어진 시어머니의 시시콜콜한 당부가 5분을 넘어가고 있었다. 밖에서 안 나오고 뭐 하냐고 소리치던 남편이 현관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아내가 전화받는 모습을 본 남편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다짜고짜 아내의 손에서 수화기를 홱 낚아채더니 고함을 빽 질렀다.
"엄마! 내가 엄마가 먹으라면 먹고, 죽으라면 죽을까? 어이? 아이 씨이!" 남편은 수화기를 거실 바닥으로 집어 던져 박살을 냈다. 아내가 말릴 사이도 없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시어머니는 외동아들인 남편을 끔찍이 아꼈다. 대학을 갈 때도, 군대를 갈 때도, 직장을 잡을 때도 심지어 결혼할 여자를 만날 때도 엄마의 계획과 관리는 끊이지 않았다. 그날 이후 남편은 시댁과 연락을 끊었다. 아내에게도 절대 연락하지 말라며 명령에 가까운 약속을 받아냈다. 결혼한 지 한 달 만에 벌어진 일에 누구보다 기가 막혔던 건 아내였다.
(...생략...)
폭력이란 물건이 날아다니고 주먹이 오가는 일이 아니다. 상대를 내 마음대로 하려는 것이 폭력이다. 폭력이란 통제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너는 너고 나는 나로 사는 것이 비폭력이다. 우리가 관심이라는 이름 아래 폭력을 행사하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봐야 할 때다.
< 이서원 / ‘숙제 같은 인생을, 축제 같은 인생으로’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