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책 없는 낙관론자
대책 없는 낙관론자
성격분석 이론으로 ‘MBTI 유형분석’이 있는데 사람이 지닌 성격을 외향과 내향, 감각과 직관, 사고와 감정, 판단과 인식 등에 따라 16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그러나 보통 일반인들이 알기 쉽게는 내향형과 외향형으로 나눌 수 있다. 집사람과 나는 성격이 확실하게 구분된다. 집사람은 내향형으로 꼼꼼하고 이성적이고 나는 매사를 대충하며 감성적이다.
단순한 예를 들면 외출을 할 때 집 앞에 차를 대기하고 집사람을 기다리는 시간은 지루하다. “빨리 나오지 않고 뭘 그렇게 꾸물대나”는 말이 목구멍에서 나오려고 하지만 속으로 삼킨다. 또 차에 타고 막 출발하려고 하면 뭘 확인하고 오겠다며 다시 집안으로 들어간다. 아무 이상이 없었는데도 강박증 같은 게 있는 것 같은 집사람에게 “걱정이 많아 탈이다”고 하면 생전에 장인께서는 외출할 때 남자인 본인이 직접 집단속 다 하신다고 나의 말문을 막아버린다.
이렇게 성격이 달라도 함께 잘 사는 것을 보면 서로 모자란 부분을 채워주는 상호보완관계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부부가 취향이나 성격이 같아야 마찰이나 갈등 없이 잘 지낸다는 이론은 썩 잘 맞지 않는 가설이다. 더군다나 노인이 되면 서로 부족한 부분을 보충해 줄 역할이 필요하다.
어제는 참 이상한 날이었다. 집사람이 아들 집에 간 사이에 내가 주전자에 물을 끓이다가 깜빡, 한참을 밖에서 일을 하다 화재 직전에 발견했다. 주전자가 시커멓게 타가고 있었고 쇠붙이 타는 냄새가 진동을 했다. 열에 취약한 목조주택을 하마터면 태울 뻔 했다. 내가 주방에서 사고를 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니 그만큼 부엌살림을 도와주지 않았다는 것을 반증하기도 한다. 집사람이 가끔 냄비를 태우는 것을 보고 집사람이 정신없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아니올시다’ 이다.
또 하나 어제 저녁을 아들 집에서 먹고 혼자 집에 왔는데 집에 들어와서 핸드폰을 놓고 왔다는 것을 알았다. “오늘 내가 왜 이러지. 칠십이 코앞이니 이제 서서히 혼 줄을 놓고 있는가?” 곧바로 이웃집으로 가서 아들집에 잠간 가 있는 집사람에게 핸드폰 놓고 왔다고 대신 전화를 부탁했다. 내일 찾아가겠다고. 평소에는 어디에 물건을 깜박 놓고 올 때, 대부분 출발한 후 얼마 되지 않아 생각이 나는데 어제는 집에 와서야 생각이 떠올랐다. 나에게도 어쩔 수 없는 노화가 찾아왔다.
어제는 비교적 걱정에 둔감한 나에게 ‘대책 없는 낙관론자’는 사고유발 가능성이 높은 위험한 성격의 소유자임을 자각하게 했다. 노년에는 가급적 부부가 함께 할 것. 꺼진 불도 다시 한 번 꼼꼼히 살필 것. 대충대충 얼렁뚱땅 살지 말 것. 이런 단어들이 떠오르는 날이었다.
(2021.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