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 수필

인생의 기쁨과 슬픔

송담(松潭) 2018. 5. 23. 05:42

 

인생의 기쁨과 슬픔

 

지교헌

 

 사람이 살다보면 더러는 기쁜 일이 많은 것처럼 보이기도하고 더러는 슬픈 일이 많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기쁨과 슬픔이라는 개념이 뚜렷한 것도 아니고 주관적인 요소도 많으며, 분명히 느끼거나 판단하기도 어려운 점이 많다. 따라서 기쁨과 슬픔이 아무런 규칙도 없이 예측하기 어려운 수준에서 교차하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인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특별히 기쁨을 기억하고 드러내거나 슬픔을 기억하고 드러내는 경향이 있다. 이리하여 어떤 사람은 일생을 대체로 기쁘다고 느끼거나 그처럼 남에게 평가를 받는가하면 어떤 사람은 그와 반대로 느끼거나 평가를 받기도 한다. 만일 인생을 연극에 비유한다면 상황에 따라 희극으로 또는 비극으로 느끼거나 평가될 수 있다. 그러나 복잡하고 오묘한 인생을 일반적인 희극이나 비극으로 단순하게 양분하여 보기도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말하자면 보는 이의 주관에 따라, 나이나 지식이나 사회적 환경이나 시대적 조류나 가치관에 따라 차이를 드러낼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들수록 자신의 삶을 문득 문득 되돌아볼 때가 많은 것 같다. 특히 선배나 동료나 후배들의 부음(訃音)이 들릴 때마다 그 사람의 삶에 대하여 평가하는 동시에 자신에 대하여도 평가하게 된다. 금년 들어 친구들의 부음이 부쩍 자주 들려오는 것 같다. 그 중에는 비교적 건강하게 살다가 마친 사람도 있지만 오랜 기간을 병상에서 고생하다가 마친 사람도 있다. 그리고 비교적 성공하였다는 사람도 있고 더러는 평범하게 살다가 아쉬움을 남기고 떠난 사람도 있다. 그들에게는 틀림없이 기쁨도 있고 슬픔도 있었을 것이지만 제삼자로서는 그저 단편적으로 짐작하고 판단할 뿐이다.

 

 인생에 있어서 기쁜 일이란 무엇일까. 송나라 홍매(洪邁)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인생사희’(人生四喜)라는 글에서 구한봉감우’(久旱逢甘雨), ‘타향우고지’(他鄕遇故知), ‘동방화촉야’(洞房華燭夜), ‘금방괘명시’(金榜掛名時)를 공통적으로 거론하였다고 한다. 오랜 가뭄 끝에 비를 만나고, 객지에서 옛 친구를 만나고, 일생의 반려자를 만나고, 각종임용고시 합격자명단에 오르는 것이야말로 크게 기쁜 일이다. 그렇지만 그것도 절대적인 행복이라고 하기는 어렵고 인생이 겪는 기쁨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들이 기쁨을 느끼고 행복을 느끼는 일은 참으로 형형색색이어서 일일이 열거하기가 어렵다. 심지어는 세상 사람들이 행복이라고 기쁘게 여기는 일, 이를테면 일찍이 높은 자리에 오르는 일[少年登高科]이나 훌륭한 재주가 있고 문장에 뛰어난 것[有高才能文章]도 오히려 불행이라고 여기는 수가 있다. 세속적인 행운이 오히려 화근이 되는 경우를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는 개성이 존중되고 모든 분야가 극도로 전문화하고 스포츠나 관광을 비롯한 취미생활이 활성화하여 욜로(YOLO; Your only Live once)족이라는 말이 유행하는 시대에서랴.

 

이제 와서 나의 일생을 회고하노라면 희비가 엇갈린 듯싶다. 기쁨의 이면에는 여러 가지 쓰라리고 괴롭고 힘들고 외롭고 절망적인 순간들이 면면히 이어지고 축적되고 감추어져 있었고 그것은 다시 기쁨의 전환점을 맞기도 하였다.

 

 오늘은 더위를 피하여 노인들이 모이는 사랑방으로 나갔다. H회장이 고운 모시옷을 차려 입고 앉아 있었다. 용모가 단정한 그는 신선을 상상하게 하는 고결한 모습이었다. 부유한 가정에서 성장하여 청렴하고 성실한 고위직공무원으로 봉직하다가 행복한 노후를 즐기는 처지였다. 며칠 전에는 두보(杜甫)의 절구 한 편을 소개하였다.

 

이월이파삼월래 (二月已破三月來) 점로봉춘능기회 (漸老逢春能幾回)

막사신외무궁사 (莫思身外無窮事) 차진생전유한배 (且盡生前有限杯)

 

 그는 모시옷을 입으면 앞으로 몇 번이나 더 입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심정을 토로하였다. 마치 두보가 봄을 맞이하면 몇 번이나 더 맞이할 것인가를 읊은 것처럼. 사람은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지, 무엇 때문에 애증(愛憎)의 소용돌이 속에서 방황하는지 묻고 싶은 때가 있다. 그리고 무엇이 기쁨이고 무엇이 슬픔인지, , 무엇 때문에 기쁨과 슬픔이 나누어지고 그것이 무슨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도.

 

 초로(草露)와 같고 고해와 같은 속세를 절연한 수도자들이나, 염세주의자들이나 회의론자들은 무엇을 발견하고 무엇을 깨달았는지, 그들의 기쁨은 무엇이고 슬픔은 무엇인지 궁금하기도 하다.

 

 인생의 기쁨이나 슬픔을 탐구하고 노래한 시인이나 수도자나 철학자들은 수없이 많다. 그러나 그들이 얻은 것은 그다지 뚜렷하지 않은 것 같다. ‘불가해’(不可解)를 주장하는 사람들도 너무나 많은 것이 역사적 현실이다. (2017.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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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수필문학 추천완료 (1994) 한국수필문학가협회 회원

한국문협, 국제PEN한국본부, 한국경기수필문협 회원

수필집<<그들의 인생철학>> 외 수필 및 논저 다수. d424902@hanmail.net